▲레샤가 만들어준 보르시비트 뿌리 혹은 사탕무로 발효된 비트 주스를 끓여 만든 보르시(борщ, borscht)는 우크라이나 전통요리이다. 레샤는 퇴근 이후 나를 위해 보르시를 만들어주었다.
신예진
집에 들어서니 퇴근한 레샤는 우크라이나 전통 음식인 보르시를 대접했다. 나는 레샤 가족이 우크라이나 난민인지 몰랐기에 그들의 아픈 상처를 주지 않고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보르시를 먹는 레샤에게 느껴지는 차분함은 그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우러나는 우울감처럼 보였다. 레샤는 자기 집이 누추하다며 말했다.
"정부 지원 아파트여서 임대료를 내지 않지만, 계약이 내년까지야. 그 이후에는 다시 우리가 어디에서 지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레샤에 따르면,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아들과 함께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단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난민은 오늘날 830만 명이 넘는다고.
또 국내 실향민은 370만 명에 이른단다.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은 조부모를 두고 나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아들과 함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2023년 아들과 걸어서 슬로바키아 국경으로 넘어온 뒤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