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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나는 이유를 듣다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다이, 정담아르테 현대미술강좌 후기

등록 2024.11.01 09:55수정 2024.11.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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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미술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물어보더란다.

"미술관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나도 되나요?"


학예연구사 김다이는 이렇게 답했다 한다.

"그 냄새까지 작품이니까요."

감자 700kg가 깔린 전북도립미술관 전시 아녜스 바르다의 '감자토피아' 전시 장면을 김다이 학예사가 설명하고 있다.
감자 700kg가 깔린 전북도립미술관 전시아녜스 바르다의 '감자토피아' 전시 장면을 김다이 학예사가 설명하고 있다.김규영

<버릴 것 없는 전시>(2024.3.29.-6.30)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누벨바그 영화의 어머니'이자 현대미술가인 아녜스 바르다는 버려져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를 촬영하면서 감자를 주워가는 사람들에게 왜 가져가는지 물어보았다.

여기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가져가는 사람, 무료 급식소에 가져다 주려는 사람 등이 있었다. 작가는 수많은 감자들이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내버려진 모습을 영상에 담으면서 싹튼 하트 모양의 감자를 집으로 가져갔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이 영상을 백색 벽을 스크린 삼아 틀어놓은 '단정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 어둑한 조명에 세운 삼면의 스크린에서는 싹이 난 감자 영상이 재생된다.


그런데 전시관 바닥에는 진짜 감자가 수북하게 깔려 있다. 전주 송천동 시장에서 직접 사온 감자 700kg이다. 전시 기간 동안 흙투성이 감자는 싹이 피고 짓물러 냄새도 난다. 시간이 흐르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이다.

이건 처치 곤란한 쓰레기 더미일까. 그게 아니라 김다이 학예사의 기획 중 일부이다.


'한쪽에는 과잉 생산된 상품들이, 다른 한쪽에는 교환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버려진 '잉여'들이 끝없이 쏟아지는 지구의 단상은 과잉과 결핍 사이의, 혹은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공회전과 다르지 않다.'

-<버릴 것 없는 전시> 소개글 중에서

작가가 작품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을 관람객이 듣고 받아갈 수 있는 전시가 되도록 중간에서 매개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획자는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서 프리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즉 뭘 이야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획자가 없는 전시는 담론이 없는, 메시지가 없는 전시가 됩니다."

김다이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정담아르테_현대미술강좌에서 강연 중이다
김다이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정담아르테_현대미술강좌에서 강연 중이다김규영

지난 10월 30일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정담아르떼_현대미술강좌]의 네 번째 시간으로 '지역거점미술관으로서 전북도립미술관의 역할과 미래' 강연이 있었다. 지난 주의 시각 연구 밴드 이끼바위쿠르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지은 작가의 다정하고 자유로운 '벗에 관하여' 강연 후에 제도권 미술에 대해 들으려니, 처음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북도립미술관의 김다이 학예사가 시도한 새로운 전북도립미술관의 모습은, 들으면서 점차 등받이에 늘어지게 기대고 있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게 만들었고 연필을 쥐고 정신없이 필기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전북도립미술관은 근처에 산이 있어 주변 풍광은 아름답지만 심심하고 특성 없는 전시 공간이었다. 당연히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하지만 이날 강연을 통해 보게 된 최근의 기획 전시 포스터는 전북도립미술관이 지난 2년간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서 이 전시들을 놓쳤다니, 무릎을 치는 후회의 감정부터 올라온다.

예술은 볼거리가 전부? "대안적 상상력 보여줄 수 있어야"

전시 포스터 김다이 학예사가 소개한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 포스터 몇 장
전시 포스터김다이 학예사가 소개한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 포스터 몇 장김규영

특히 지난해의 <미안해요 프랑켄슈타인>(2023.7.28.~2023.11.26.) 특별전은 도립미술관 개관 이래 최초로 국내 주요 미술전문 잡지 '아트 인 컬쳐'에도 실려 평단과 대중에게 모두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특별전이 '인간 활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인류세Anthropocene의 관점'으로 본 전시였다면, 올해의 <버릴 것 없는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통제 불능의 자본세Capitalocene의 정치 경제 사회적 개념이 된 쓰레기와 동시대 예술의 접점을 탐구'한 것이다(전시 소개글에서 일부 인용).

여기엔 인류세, 자본세,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등, 생태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가장 최신의 담론 개념과 학자들이 담겨 있다.

나라 간의 경계가 의미 없어진 지금, 도립미술관은 지역 토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서 머무를 수 없다고, 비안간 존재와 공존하기 위해 지구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전부일까요?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창이 되어야 합니다. 대안적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미술관은 공론장입니다. 관람객이 미술관을 나서면서 전시에서 전달한 메시지를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김다이 학예사와 함께한 '정담아르떼'의 취지도 그와 같다고 한다.

이영욱 미술평론가의 <비평으로 읽는 현대 한국미술_ 해방 이후 현재까지>, 박찬경 작가의 <전통의 새로운 이해와 탈식민성>, 조지은 작가의 <현대한국미술에서의 공공적 실천_ 벗에 관하여>로 이어진 프로그램의 면면이 그러하다. 다음 주 고보연 작가의 <삶의 환경과 미술의 언어>, 신석호 작가의 <자역이 말할 수 있는 것은?>의 강연도 기대되는 까닭이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다. 관람객들은 그런 거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피카소 같은 유명한 작가 전시를 좋아한다고. 대형 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이 무엇이고 예술이 무엇인가. '관람객 숫자가 많으면 좋은 전시'라고 말하는 정량적 평가를 괜찮은 전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공공미술관이 대안적 화두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파격적이다. 그러나 다른 시립, 도립미술관에 비해 예산도 인력도 1/3 수준으로 열악한 전북도립미술관은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전북이라는 지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볼 때 인구소멸 지역 비중이 높고 지자체 예산이 꼴찌에 가까운 전북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서울처럼 큰 규모를 가진 도시를 모델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담아르테_현대미술강좌 part.4 전북도립미술관 김다이 학예사의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정담아르테_현대미술강좌 part.4전북도립미술관 김다이 학예사의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문가은

전북도립미술관은 이 <버릴 것 없는 전시> 등을 기획하면서 미술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재생 가능한 리플렛을 제작하거나, 다른 전시에서 썼던 가벽 등을 활용한단다. 일명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냈던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재료를 구입하는 대신 미술관 주변에 널린 나무토막으로 참여자들이 직접 의자를 만들고, 그것을 미술관 곳곳에 두었다. 휴게공간이 필요한 관람객이 실제 사용하고 있다.

동시대적 화두를 고민하는 대안적 전시가 쌓이면 전북도립미술관만의 정체성이 구축될 것이다.

여기저기서 쓰레기가 넘쳐나고 쓰레기를 양산하고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늘어나고 자살과 생명이 경시되는 현 시점에서, 모악산 전북도립미술관을 찾을 일이 늘어날 것 같다. 이 미술관이 앞으로 어떤 공론장의 전시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정담북아르테_현대미술강좌는 국립군산대학교 국립대학 육성사업으로 인문도시센터와 문화예술기획 평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전북도립미술관 #김다이학예사 #정담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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