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신문
"소나무는 한국인의 얼이다". 국내 유명 소나무 사진가의 어록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 생명이 태어나면 소나무 가지를 꺾어 금줄에 매달아 놓았다. 또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면서 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치는 날에는 소나무로 짠 관에 담겨 자연으로 돌아갔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한반도의 소나무는 1만 년 전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했을 정도로 소나무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를 일러 '소나무 문화'라고도 한다. 이는 소나무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집짓는 일을 천지신명과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은 가족의 안락과 행복을 누려할 곳이기에 당연히 신성한 공간이라고 사람들은 여겼다. 집을 지을 때는 가장 좋은 목재를 사용했다. 특히 대들보는 반듯한 소나무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했다. 나랏님의 용상에는 '일월오봉도'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 달과 성산인 곤륜산 5개의 봉우리가 특징이다. 봉우리 양옆으로 붉은 소나무가 영험한 자태로 있으며 그 사이에는 계곡과 폭포수, 그 아래는 포말이 부셔지는 파도가 그려졌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를 장수의 상징물로 첫 손을 꼽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신령함의 거소로 여기는 왕릉을 비롯해서 종묘 등 성현들과 선대왕을 모신 사묘에도 소나무를 심었다. 또한, 세찬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늘 푸른 잎을 유지한 소나무의 고고함은 선비가 지녀야 할 굳센 기품과 꼿꼿한 절개를 상징했다.
솔잎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일을 '신선의 식사'라고도 했다. 솔잎은 정신을 맑게 한다. 솔잎은 몸을 가볍게 하고 기를 보충해 준다. 소나무가 지닌 이러한 성정은 유교문화 중심에 있던 선비의 고결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인의 가슴 속에 깊숙이 박힌 소나무는 하나의 신앙이면서 사상과 풍습에 녹여져 우리의 정서와 마음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됐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얼'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런가 하면 IMF로 온 국민이 힘들어 할 때 골프영웅 박세리 선수의 투혼과 교차한 소나무의 기상을 반영했던 상록수의 노랫말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드넓은 만주 벌판에서 목 놓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독립투사의 '일송정 푸른 솔'은 광야와도 같은 우리 마음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소나무는 우리의 영혼과도 같은 한국의 상징나무이다.
그런데, 그 소나무가 지금 아프다. 전국의 소나무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일제 수탈에 의해 태평양 전쟁의 물자 공급으로 송진을 채취 당했는가 하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총탄을 맞고 신음하면서도 꿋꿋이 버텨왔던 우리의 소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