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오전 9시께 방문한 서울 금천구 소재 아파트 경비초소. 1982년 준공 후 1평 남짓한 초소는 한 번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폭염과 한파에 취약한 상태다.
김화빈
지난 10월 10일 오전 10시 아파트 내 관리사무소를 방문해 냉난방기 설치 부결 이유를 묻자 위해 관리소장은 기자가 내민 명함을 내던지며 "현행법은 '최선을 다하라'고 규정했을 뿐 (이행하지 않을 시 처벌하는) 벌칙규정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자,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이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다(제65조의 2). 금천구청도 '공동주택 관리 노동자 근무시설 설치·개선 사업'을 시행하고, 사업비의 50%를 지원하고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업을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023년 8월부터 '50인 미만 포함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해당 아파트도 단지 가장자리에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을 설치했다. 하지만 경비초소와 거리가 멀고 경비원들이 초소를 비우기 어려워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다. 기자가 이를 지적하자 일부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와 소장은 "여름에는 시원한 지하실로 가서 쉬면 된다"고 말했다.
관리소장은 "아파트 동대표들이 의결만 하면 에어컨 설치는 1평이든 반 평이든 설치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도 "동대표들끼리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주자대표회의 내부 갈등을 언급했다.
입주민 선의에 기대야 하는 휴게권
해당 아파트 26·27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자 동대표인 B씨는 "올해 동대표들이 모여 안건을 부결했으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해서 일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혼자 회장이라고 동대표들 (입장이) 다 있는데 따로 (행동)하면 화합이 되겠나"라고 말했다. 냉난방기 설치를 반대하는 또 다른 동대표들도 "아파트는 공동체"라고 동조했다.
'냉난방기 설치가 회장 독단'이라는 지적에 현재 회장인 A씨는 "냉난방기 설치 기사님께 견적도 받고, 의논하자고 제안도 했지만, (동대표들이) 응하지 않았다"며 "사이가 서로 안 좋다고 이 문제를 언제까지 내버려둬야 하나"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강제력 없는 법이 경비 노동자들의 휴게권을 입주민 선의에 기대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은성 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는 "법이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범자(규율 대상자)에게는 강제력이 있어야 하고, 수혜자에게는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 노무사는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강제성이 없고, 휴게시설 설치·운영 기준을 다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도 현장과 괴리된 측면이 있다"면서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제도안착을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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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 400원이 부담? 경비실 에어컨 설치 못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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