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자책 표지
시사인북
책에 나온, 이들이 시도한 방대한 질문과 분석작업은 이대남이 그저 세대 내 일부 집단의 발호가 아니고, 일시적인 정치적 현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언론이 그저 '여성혐오'쯤으로 치환해 부르는 현상이 이들 정체성의 전부도 아님을 드러낸다. 이들이 드러내는 공정에 대한 집착과 일관성 있는 답변은 이 세대가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내보인다.
그런데 그 정의론은 지난 시대의 잣대에 비하여 가혹하기 짝이 없다. 한국사회는 어느 때보다 잔혹하고 여유 없는 기준을 가진 집단을 길러냈고, 그를 이해하지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로 같은 방식의 교육과 사회를 운영해오고 있단 것, 그게 이 책이 닿은 귀결이다.
젊은 남성들이 보여주는 태도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혐오'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태도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놓고 기준과 잣대가 눈에 띄게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이 가혹한 기준을 통과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적 우대나 지원 정책에도 불공정 딱지가 붙는다. -7p
모두 236페이지로 꾸려진 책엔 20대 남성 집단을 상대로 물은 설문과 답변이 최대한 폭넓게 들어갔다. 설문 하나에 분석 한 장이 채워지는 식으로, 데이터를 정리한 표와 그래프, 다시 이를 해석한 글을 이어가며 실었다. 대체로 20대 남성의 비교군으로 20대 여성과 20~30대 남녀집단을 내세워 같은 질문에 20대 남성의 답이 크게 엇갈리는 대목과 그렇지 않은 항목을 두루 소개한다.
책을 읽고나면 당초 이대남 현상의 원인으로 쉽게 추측되었던 답들, 이를테면 정치적 보수화나 여성혐오 성향이 폭넓게 퍼졌다는 것, 공정성에 대한 애착이 커서 작은 손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등의 설명이 꼭 들어맞지도 않는단 사실이 확인된다.
대통령 탄핵과 같은 정치적 사안, 복지국가에 대한 입장 등 정치적인 성향을 내보이는 질문에 대해 20대 남성이 유달리 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공정성에 대한 대목이나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다른 세대며 성별과 두드러진 차이가 없다. 젠더도 권력도 이들의 특별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둘을 함께 묶어 묻는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208개 문항에 이르는 광범위한 조사를 한 결과, 우리는 '권력이 남성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현상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20대 남자의 인식 세계에서 남성은 약자다. 능력은 남자가 뛰어나지만 권력이 남성을 차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여성 우대 정책을 '역차별''로 인식하던 윗세대 남자들과도 결이 다르다. 남성이 약자라는 인식, 남성이 마이너리티라는 정체성이 등장했다. 그래서 역차별이 아니라 그냥 차별이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 핵심이다.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20대 남성 여론의 특수성이 따라서 사라진다. -59p
25.9%, 반페미니즘 자의식을 공유하는 20대 남자
책은 여러 질문을 통해 스스로로 마이너리티라 여기는 20대 남성 집단의 규모가 가장 격렬한 축만 잡아도 4분의 1가량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그중 가장 선명한 지표로, 그에 별 관심이 없거나 우호적인 다른 세대 남성에 비하여 강력한 반대 답변을 일관되게 내어놓는다.
페미니즘 관련 6개 문항 모두에 강한 반대 답변을 내놓은 응답자가 무려 25.9%에 이를 정도다. 일반적인 여성 문제나 평등 문제에는 다른 세대와 큰 차이가 없던 이들이 페미니즘이 언급된 항목마다 격렬하게 반응한다. 책이 이를 두고 '화가 나 있다'고 표현할 정도.
20대 남성 가운데 25.9%, 관련 문항 모두에 가장 강한 수준의 답을 내놓는 신념 집단이 소위 이대남의 중심이 된다. 책은 이로부터 이들이 공유하는 또 다른 특질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들을 '반페미니즘 신념형 20대 남자'라 분리하여 교육과 혼인, 공정 등에 대한 답변을 구분해 내보인다. 그중 이들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답변이 여럿 발견된다. 사회가 돌아가는 작동원리를 경쟁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다는 문항에 다른 세대보다 격렬히 동의하면서도, 그와 같은 경쟁의 과실을 승자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데도 문제의식이 얼마 없다. 이들이 반대하는 건 그와 같은 경쟁을 공정하지 못하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성세대에 대해서도, 여성에 대해서도 선명한 반감을 내보인다.
여성할당과 여성 고위직 비율확대 등의 정책에 대해 다른 세대, 집단보다 격렬히 저항하는 게 대표적이다. 책은 여러 문항을 들어 이들이 이와 같은 성질을 드러내기까지 그 저변에 깔린 문제를 추적하고, 그 현상을 구체화한다.
이들은 또래 여자에게 위축되거나 피해의식을 가졌을 개연성이 있다. 초·중·고 교육과정이나 입시 경쟁에서, 또 데이트 시장에서 '피해의 경험'을 공유한다. 사실이든 허위든 이것이 정체성의 원재료일 수 있다. 이들은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이들은 공정 그 자체 외에 다른 잣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30p
그들을 길러낸 것 또한 이 사회
조사는 20대 남자가 누구인지를 보인다. 맥락이 거세된 공정에 집착하고, 경쟁에 따른 성과에 호의적이며, 페미니즘에 발작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 이대남의 정체성으로 제시된다.
그 원인으로 꼽는 것은 '남성 마이너리티', 사상 최초로 세대적으론 젊고 성별로는 남성인 이 집단이 스스로를 차별받는 약자로 여긴다는 진단이다. 살피자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단 생각도 드는 가운데, 이대남을 한심하게만 여겨온 흔한 태도와 해석에 은근한 반감까지 든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대남의 피해의식을 마땅한 결과라 여기게 된다. 그들의 서사와 그들이 마주한 박탈감이며 패배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또한 이해할 수는 있을 테다.
그러나 어느 세대라고 스스로가 사회적 과실을 누렸다며 감격해할까. 전쟁을 겪은 이들은 그대로, 전후세대는 또 그들대로, 독재와 투쟁한 586과 지난 시대 불평등을 감내해온 여성들까지, 각자가 저마다의 짐을 지고 버텨왔던 것이다. 사회적 자산은 유한하고 성장동력은 꺾여버린 암울한 환경 가운데 이대남이며 이들을 오늘의 이대남으로 만든 세태까지가 모두 하찮게만 느껴진다.
세대를 길러낸 건 결국 시대와 사회다. 오늘의 이대남이 치졸하다면 그들을 둘러싼 시대며 사회는 꼭 그만큼 치졸한 게 아닐까. 천관율과 정한울의 분석을 보고 나니 나는 조금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20대 남자 -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천관율, 정한울 (지은이),
시사IN북, 2019
20대 여자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지은이),
시사IN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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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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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약자'... 이대남의 정체성을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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