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10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 을 알리는 인쇄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하며 기숙학원에 등록해 대입에 다 걸기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는 가정에서나 선택할 수 있어, 자퇴가 되레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다. 그들의 성공담은 인터넷 광고와 입소문을 타고 고1 교실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기실 그들을 향한 아이들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내심 부러우면서도 불만 가득한 낯빛 또한 역력하다. '돈의 위력'에 기댄 그들의 향상된 수능 점수가 자신의 대학 진학의 장애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학과 학과마다 내걸린 수능 최저 등급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방침에 의대생과 전공의보다 더 크게 반발하는 이들이 고3 수험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기존의 의대를 지망한 'N수생'에다 명문대 공대생과 멀쩡한 직장인들까지 수능에 응시하는 상황에서 수능 최저 등급 맞추기는 당장 생존이 걸린 사안이 됐다. 고3 수험생에게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의료 붕괴의 참혹한 상황은 차후 문제다.
내신 성적이든 수능 최저 등급이든, 어차피 상대 평가 체제에서는 '모수'가 많을수록, 대신 자기보다 성적이 높은 이들은 적을수록 유리하다. 누구든 자기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면 상대방의 성적이 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성적이 엇비슷한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이자 '적'이다.
"걔 때문에 자칫 제 등급이 내려가게 될지도 몰라요."
반 친구의 자퇴 소식에 몇몇 아이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쏟아냈다. '모수'가 줄어들어 손해를 입게 됐다는 뜻이다. 특히 상하위 등급이 갈리는 언저리의 성적인 경우, 한명 한명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하소연했다. 모르긴 해도, 자기보다 성적이 높은 친구가 자퇴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학교생활은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한 무한경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입에 보탬이 안 되는 활동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수능에 다 걸기 하는, 이른바 '정시 파이터'들은 협동 학습과 과제, 심지어 수행평가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학교는 '급식을 제공하는 독서실'일 뿐이다.
학교엘 다니든 자퇴하든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저 어느 곳에서 무한경쟁에 참여하고 있느냐의 문제일 테니 말이다. 단언컨대,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댄 대학 입시를 철폐하지 않는 한, 당장 한 줄 세워 등급을 가르는 상대 평가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 학교 교육의 미래는 없다.
복마전이 되어 가는 학교 현장에서 나날이 아이들의 성정은 삭막해져만 가고, 교사들은 무력감에 지쳐 간다. 자퇴의 도미노를 막아설 권위도 없고, 그들을 설득할 논리도 마땅찮다. 그저 자퇴를 결정한 아이의 '건투'를 빌 뿐이다. 여기서 '건투'란 명문대 합격이 아니라, 올곧은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니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뒷맛 개운치 않은 한국은행 총재의 지적
사족. 얼마 전 한국은행 총재가 대입이 수도권 집값 상승과 지역 소멸 등의 주요인이라며 '지역별 비례 입학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구 규모와 경제적 격차로 인한 기회 불평등을 대입 정원에 반영하자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하지만, 대입 정원을 핑계 삼을 것 없이 애초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자퇴조차 돈이 있어야 선택지가 되는 마당에 '지역별 비례 입학제'는 이른바 지역 토호들의 꽃놀이패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대학에서 생색내는 '지역 균형 선발 제도'가 지역의 최상위권 아이들의 특권처럼 활용되는 현실이다. 더욱이 그렇게 명문대에 진학한 뒤 서울을 삶의 터전 삼는 이들을 과연 지역 인재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 교육의 당면 문제를 교육부 장관이 아닌, 생뚱맞은 한국은행 총재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찮다.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교육 정책에 대해 일갈하는 모습을 교육부 장관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라는 신선놀음에 빠져 도끼 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 것만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2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고1 재수 택하는 아이들... 성적 위해 이런 일까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