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고택(충남 예산) 가까운 곳에 조성된 김정희의 묘. (2020년 9월 촬영)
이재우
'칠십 년 마천십연 독진천호'(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
"나는 칠십 년 동안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천 개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71년을 살다 세상을 떠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삶을 압축한 말이다. 평생의 벗인 권돈인(權敦仁: 1783~1859)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인 이 말은 추사의 유언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글을 썼으면 벼루 10개에 구멍이 뚫리고, 붓이 천 개나 망가졌을까? 가늠하고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 작가의 글을 보자.
"먹 1만 개가 다 닳을 때 벼루 하나가 뚫린다면, 적어도 먹 10만 개는 사라졌으리라." (이상국 저, '추사에 미치다', 푸른역사)
이런 추사의 삶은 중국 위나라 재상 종요(鍾繇)를 연상케 한다. 종요는 '해서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인물로, 두문불출하며 글씨 연습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종 직전에 아들에게 "나는 누워서도 글자 획을 연습하며 이불을 뚫었을 정도였다(臥畵被穿過表)"고 말하기도 했다.
추사가 가장 아꼈던 중국 단계연(端溪硯) 벼루
추사가 사용했다는 벼루(3종)와 붓(7종)은 김정희의 충남 예산 종가에서 소장되어 오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벼루 중에 구름과 용무늬가 있는 '운룡문 단계연(雲龍文端溪硯)'이란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