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걸린 민주당 해리스-공화당 트럼프 후보 지지 깃발. 이번 선거가 끝나면 후보 지지 깃발은 내려오겠지만, 어떤 후보를 지지했든 성조기는 그대로 깃대에 남아 휘날릴 것이다. 미국민의 가슴 속 깃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장소영
대선이 아니어도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은근한 차별을 겪는다. 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 즉 차별은 나쁘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같이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다. 또, 이민자들 또한 은근한 차별에는 은근하게 저항을 하는 법도 터득해 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은근한 차별'과는 달리 지도자의 태도와 발언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파장이 크게 일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던 2016년 대선 기간 동안, 순식간에 달라진 동네 분위기에 당황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내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스쿨버스 스탑(하차 지정 장소)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내 곁으로 갑자기 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한 젊은이가 욕설 섞인 단어들과 함께 '바보 같은 노란 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노란 돼지', 황인종을 향한 혐오 섞인 그 말들이 나를 향한 것인지, 이미 스쿨버스 스탑에 서서 손주를 기다리던 중국계 할머니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 다에게 한 욕설일 수 있겠지만, 청년들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노란'이란 단어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중국계 할머님은 영어를 거의 못하신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할머니 얼굴에 당혹감을 넘어 무서워 하시는 표정이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어디에나 저런 나쁜 놈들이 있다고 천천히 다독였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영 편치 않아 보였다.
며칠 후, 아이들 친구 엄마이자 할머님의 따님인 중국계 이웃이 스쿨버스 정류장에 나왔다. 평소 직장을 다니는 분이라 잘 보지 못하는데 나를 보기 위해 일부러 나온 듯 했다. 역시 내게 '그 차에서 정확히 뭐라고 했느냐'라고 묻더니, 내게 동네 주민들이 애용하는 SNS에 올라온 사건을 봤는지도 물어온다.
개요는 이렇다. 익명으로 올라온 게시물에는, 매일 운동 삼아 자주 동네를 걷던 어떤 주민이 음료 컵 공격을 당했다고 써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창문을 조금 열더니, 욕설과 함께 음료가 든 컵을 자신에게 던지고 재빨리 달아났다고 한다.
거기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링'(현관 설치용 cctv)을 설치한 집이 많으니 사건 근방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cctv 화면을 가지고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다른 내용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아마 경찰은 그 정도 일에 일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젊은 애들의 장난이라 여길 것이다. 미안하지만, (인종 혐오 문제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작성자가 백인이 아니라면, 그 정도 일로 경찰이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중국계 이웃은 그 컵을 맞으며 모욕을 받은 익명 이웃이 아마 '아시안'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중국을 겨냥한 코로나 팬데믹 시즌을 모질게 겪은 데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노모의 일이다 보니 그녀의 걱정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