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이크지난 6월,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진행한 최저임금 오픈마이크에 청년이 참여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나의 첫 월급은 최저임금이었다. 이 돈으로 날이 더워졌으니 얇은 새 옷을 사고 싶었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밥을 해 먹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받는 월급으로는 세 가지를 다 할 수 없었다. 셋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저축을 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친구를 만나지 않고, 퇴근하면 집에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는 없으니 투잡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매달 여유롭게 살기엔 부족했다. 밥도 먹고, 저축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립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었는데, 왜 내 시간을 살아갈 돈은 없는 걸까. 최저임금이기 때문일까? 그럼, 최저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저의 삶은 어떤 것일까. 출퇴근이 어려울 정도로 돈이 없지는 않으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나무뿌리를 캐 먹고 살지는 않아도 되니, 삶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저선이 너무 낮지는 않을까? 우리가 살아온 역사 속에서 보릿고개 시절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보릿고개가 무엇인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6·25전쟁 때, IMF때, 독재 정권 아래서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나온 이 세월을 얼마나 불안정하고 힘들게 보내왔는지 인정받았던 적이 없었다. 그저 '이겨내 온 우리'를 대단하다 칭송만 해왔다. 그 힘듦을 이겨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현재 평생을 벌어도 저축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고들 말한다.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며 평생을 벌어도 내가 살아갈 집 한 채를 살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내가 낮은 임금이 문제라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해외에 나가서 살라고 한다. 해외살이가 얼마나 힘든데, 한국이 살기 좋으니까 여기서 살기로 마음먹었으면 '견디라고'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살기 편해서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 나갈 수 없어서 한국에 사는 것도 아니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아가고 싶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단계 넘어서서 "최저가 아닌 적정"을 상상해 보자.
나는 적어도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옷을 구경하고 한두 개 정도는 사고 싶다. 제철을 맞이한 음식들을 즐기며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가보기도 하고,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대를 하고 극장에 가고 싶다. 기념일엔 조금 돈을 모아 비싼 레스토랑에도 가보고 싶다. 친구들과 시간만 맞으면 자주 모여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월급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내 집을 살 수 있 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고 싶다. 한 번씩은 여유를 즐기며 공원에 하루종일 앉아 책 한 권을 다 읽고 집에 오고 싶다.
나는 이런 삶이 큰 바람이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한 삶은 이런 삶이다. 좋은 삶 이전에 적정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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