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울긋불긋해진 마른 잎들이 바람결에 이 집 저 집으로 날아든다. 마당 데크와 잔디밭엔 너저분한 낙엽들이 쌓였다. 울타리 전체를 감싸고 있던 담쟁이 덩굴도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뽐낸다. 해가 짧아져 오후 다섯 시만 넘어도 사위가 칠흑 같다. 앞집 할아버지 댁 키 큰 모과나무엔 모과 몇 알만이 덩그러니 달려있다. 할아버지는 매년 늦가을에 노랗게 익은 모과 몇 알을 가져다 주셨다. 왁스를 바른 것처럼 미끄덩거리는 열매를 받아 들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는 속담처럼 모과의 생김새는 울퉁불퉁했고,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코끝에 스치는 달큼한 향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이맘때면 텔레비전 위에 늘 올려져 있던 열매. 엄마는 대체 저 못생긴 과일을 철마다 어디서 가져와 올려두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특유의 향에 거부감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리던 내 표정까지 그려졌다. 노란 열매는 금방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잃었다. 표면에 손톱만 한 갈색 반점이 생기고, 반점이 점점 커져 전부 갈색으로 변하고 나서야 모과는 우리 집을 떠났다. 모과청 만들기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모과를 엄마처럼 똑같이 집안에 그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모과청을 만들기로 했다. 단단한 모과의 과육을 자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손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반으로 가른 모과 안에는 까만 씨앗이 보인다. 아이는 씨앗을 보고 괴물 이빨 같다고 했다. 모과씨는 섭취 시 독성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 꼭 제거해야 한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과육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나면 손목이 뻐근하다 못해 어깻죽지까지 아팠다. 잘라둔 모과는 동량의 설탕과 버무려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으면 완성이다. 실온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 후 먹으면 된다. 주전자나 냄비에 끓여 먹으면 더욱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달콤했다. 숙성된 모과청으로 끓여낸 모과차의 맛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나이가 들어 취향이 바뀐 것일까? 애초에 생김새로 오해받던 모과의 진심을 몰랐던 것일까? 향긋하고 우아한 맛에 푹 빠져 나는 매년 모과청을 담았다. 환절기 목이 따갑고 으슬으슬한 기운이 느껴지면 뜨끈하고 달큼한 모과차 한 잔을 마셨다. 그러고 나면 기웃대던 감기 기운이 싹 달아났다. 실제로 모과는 비타민C가 풍부하고 기침과 가래를 완화하는 효능이 있어 기관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궁금한 이웃의 안부 올해는 익은 모과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시커멓게 썩어가는 와중에도 이웃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마음에 울타리 너머 마당을 돌보는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많다고 했다. 요즘 할아버지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구나. 스산한 가을의 정경처럼 마음이 쓸쓸해졌다. 큰사진보기 ▲단단한 모과 두 알원미영 며칠 뒤 할아버지 댁 울타리 앞에 가지런히 놓아둔 모과가 보였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모과를 두 알을 손에 쥐고 집으로 들어왔다. 수고로움 뒤 한 병의 귀한 모과청을 얻었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 가지엔 이미 봄을 기다리는 꽃눈이 보인다. 꽃눈이 꽃이 될 때쯤, 계절을 무사히 잘 보낸 할아버지에게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큰사진보기 ▲내가 만든 모과청, 모과차는 향긋하고 우아한 맛이 난다.원미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과청 #모과차 #모과 #월동준비 추천18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원미영 (schizo1219) 내방 구독하기 느리지만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삽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아들 방에 CCTV라도 달아야 하나... 저만 이럴까요?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김태열 "이준석 행사 참석 대가, 명태균이 다 썼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AD AD AD 인기기사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영 손이 가지 않던 모과, 이렇게 좋은 걸 몰랐네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국감 골프' 민형배 의원 고발당해…"청탁금지법 위반"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이준석의 폭로 "윤 대통령, 특정 시장 후보 공천 요구"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