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2023년 녹사평역 인근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11월 20일)을 즈음하여 매년 개최된다.
노동당
애인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스스로 시스젠더 이성애자를 자처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예쁜 옷을 입을 때마다 잘 어울린다고 칭찬한다. 어떨 때는 이런 옷도 입어봤으면 좋겠다고 먼저 추천하기도 한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짙고, 어깨가 넓은 '남자친구'에게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며 좋아해주는 애인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 나를 '사내자식' 이상으로 봐주지 않았다. 나를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사람과는 친해지기 힘들다. 혹여나 주변의 무심한 혐오에 스치듯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다. 커밍아웃한지 꽤 시간이 지났음 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나를 '자랑스러운 집안의 장남'이 되길 바란다. 성소수자 가족에게는 흔한 일이다.
관심 있는 이벤트나 행사를 찾아도 여성 전용이니 '주민번호 뒷자리가 2 또는 4 로 시작하는 사람'만 참가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볼 때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단순히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됐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그리고 소위 '생물학적 여성'만을 받아들이게 된 상황을 계속 곱씹게 된다.
성소수자끼리의 관계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오래 전에 만나던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성별 불쾌감으로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나 그 사람이나 서로에게서 '여자다움' '남자다움'을 은근히 바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트랜스젠더라도 자기 성별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세상이다.
여성으로 인정받으려면
트랜지션을 하고, 예쁘게 꾸미면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트랜지션을 하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성별 불쾌감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도 서울에 가야 찾을 수 있고, 진단에 필요한 비용도 상당하다. 지속적인 호르몬 치료 비용도 부담스럽다. 외성기 수술 비용까지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하다.
많은 MTF 트랜스젠더들이 외성기 수술을 위해 태국으로 향한다. 태국이 외성기 수술이 발달한 것도 있지만 국내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렴하다고는 해도 천만 원 단위니, 큰 마음 먹고 수술을 받으러 가야 한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치 않는 성노동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단순히 트랜지션에 들어가는 비용만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다. 문제는 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받고 있는 정신과 치료에도 비용이 꽤 나간다는 것이다. 모든 정신질환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안고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비정상'인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숨기고 아닌 척 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밝힌다고 해도 누군가의 불쾌한 반응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그래서인지 다른 성소수자들을 만나봐도 대부분은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