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민혜민씨
이민혜민 제공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대졸을 워낙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나를 보호해 준 걸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학이 인생에서 영원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란 또 다른 증명이다. 고교 졸업이 마지막인 내 이력서를 제출해도, 잡혀 있던 강의가 취소된 적은 없었다. 적어도 공공기관에선 학력보다 경력을 더 우선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의 내 일을 정말 사랑한다(성북청년시민회를 설립한 뒤 사무국장으로 근무 중이다). 청년 세대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일이라 그렇다. 동시대 사람들이 무슨 걱정을 하며 사는지, 어떤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지 아는 것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가끔 그들을 만나면, 나는 "요즘 청년들의 가장 핵심적인 고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고 꼭 묻는다.
위원회나 공공기관 등에 가면 어른들을 만날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꼭 내게 요즘 젊은이들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물어 참 곤란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잘 모른 채 대변하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솔직하게 답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즘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하고 싶은 게 없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의미를 못 찾겠다' 같은 청년들 답변이 더 자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 사회가 제시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긴 하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대로 살 순 없다는 것, 혹은 살기 싫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직 청년들이 자기 스스로를 탓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시나리오가 낡은 게 문제였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이 청년들의 답 없는 질문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숱하게 던졌던 질문이다. 사회가 짜 놓은 시나리오와 진학 여부도 직장의 형태도 맞지 않다 보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꼭 증명하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 해서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을 쓰고, 일기장에 글을 쓰고, 발표로 경험을 나누고, 모임을 열었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활동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지금 나는 내가 관심 지닌 의제를 토대로 사업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행사나 교육을 진행하는 일을 한다. 저녁 시간엔 동네에 열리는 모임에 가거나 집안일을 하고, 주말에는 독서 모임을 하고, 가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응원봉도 흔든다. 아무 핑계로 파티를 열어서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친구나 동료들이 힘든 일에 처해 있으면 같이 분노하고 연대하러 여기저기 다닌다.
그 와중에 찍은 영상으로 브이로그도 만들고, 거기서 출발한 생각들을 담아 팟캐스트도 만들었다. 이렇게 살라고 정해준 사람도 없고, 이렇게 살겠다고 계획한 적도 없지만, 내가 어떨 때 웃게 되는지를 자주 고민한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살펴 보고, 실천해 보려 노력하는 과정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쩌면 언젠가는 대학에 갈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전과 달리 '대학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더는 하지 않게 되었는데 말이다.
삶이 계속되는 만큼 질문도, 가능성도 계속된다. 그중에는 내가 대학에 진학하는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고, 지금 직업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 엔딩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냥 계속 쓰고, 계속 말하고, 계속 기념하고, 계속 사랑하고 웃고, 그렇게 살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에게는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 불행보다는 다행에 가깝다. 12년 전, 그때 바뀐 서사의 흐름 덕분일까? 일단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0
투명가방끈은 학력·학벌차별과 입시경쟁에 반대하고 능력주의에 저항하며, 대학중심주의에 맞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