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윤용정
나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미역국을 끓여 수능 전날에 먹게 했다. 그런데 아들이 미역국을 먹고 속이 편안했다며 수능날 도시락에도 흰쌀밥과 미역국을 싸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미역국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미역국은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으로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하고 혈액순환, 스트레스 완화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미역국을 좋아하고, 생일 같은 기쁜 날에는 꼭 미역국을 먹었기 때문에 미역국은 아이한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미역국을 먹고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만 없애면 시험 보는 날 싸줘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근거 없는 말을 너무 오랫동안 신경 쓰며 살았다. 아마 이 말은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 같다.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로
"3당 2락이래."
얼마 전에 지인을 만나고 온 남편이 내게 말했다. 예전에는 대학의 합격 여부에 대해 '4당 5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었는데, 요즘에는 사교육비로 한 달에 3백만 원을 쓰면 붙고 2백만 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아들은 떨어지는 거야?"
아이의 학원비로 한 달에 3백만 원을 쓸 수 없는 우리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3당 2락'이니, '4당 5락'이니 하는 말들도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말처럼 누군가의 불안감이 만든 말인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싶거나.
아들이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힘이 될 만한 문장 하나씩을 찾아 노트에 썼다. 어느 날 청소하다가 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다.
"불안에게 내 삶의 핸들을 내어주지 말자!"
아침에 이 말을 기억하면서 출근했는데... 애쓰고는 있지만, 아들이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자꾸 핸들을 뺏어가려고 한다.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7
행복했던 날들, 사랑받았던 기억을 모으는 중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