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목포시가지 모습으로 목포 오거리는 목포 상업의 중심지였다. 오거리는 조선인마을, 일본인마을, 목포항으로 이어지는 다섯 길이 교차하는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오거리 주변에는 식당, 주점, 잡화점, 여관, 사진관 등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오문수
목포 해상의 상징이 삼학도와 고하도라면 육상의 상징은 유달산이다. 유달산은 세 개의 봉우리와 기암괴석 때문에 '호남의 개골산'이라고도 불린다. 근데 '고하도'의 유래를 알고 나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고하도(高下島)' 뜻을 보면 '높은 산 아래에 있는 섬'이라는 뜻이니 '유달산'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유달산 높이가 해발 228m에 불과하니. 어쨌든 목포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지명은 유달산, 고하도, 삼학도다.
근대도시로의 변화를 꿈꾸며 자주적으로 개항한 목포
유달산 아래 150호 남짓한 몇 개 자그마한 촌락이었던 목포가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계기는 1897년 '칙령개항' 때부터이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간섭을 배제하고 1897년 10월 1일 고종이 칙령으로 목포 개항을 선언했다.
이 점에서 1875년 강화도조약에 의거해 강제로 개항했던 부산, 원산, 인천의 타율적인 '조약개방'과는 성격을 달리했다. 개항 과정에서 보인 자주적 분위기는 목포의 도시 건설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조선 정부는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매립을 최대한 규제해 일본인의 영향력 확산을 견제하고 조선인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힘이 약해진 조선으로서는 엄청난 힘으로 불어닥치는 외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