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chuttersnap on Unsplash
재작년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을 때의 일이다. 모둠별로 주제를 정해 방문할 곳과 일정 등을 계획한, 나름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여행사에 위탁하지 않고 모든 걸 아이들과 교사들이 협업한 여행이었다. 시행착오를 겪는 등 과정은 힘들었을지만 결과와 평가는 꽤 만족스러웠다.
베이스캠프로서 숙소는 동일했지만, 모둠별로 일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모두가 '뚜벅이' 차림으로 사흘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곳곳을 걸어 돌아다녔다. 목적지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길 자체도 볼거리였고 즐길 거리였다. 수학여행 내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 빛이 났다.
"이렇게나 많은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데, 왜 시내 도로마다 자동차로 꽉 막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아이들을 동반하며 걷다가 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지하철 노선이 하나뿐인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깨알 같은 역명이 적힌 형형색색의 노선도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한 아이는 노선의 숫자에 놀라 서울 땅 아래에 '지하 도시'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여행하는 데는 지하철 하나면 충분했다. 18개 모둠 중에 도중 버스를 이용했다는 경우가 단 두 모둠에 불과할 정도였다. 찾아가기 쉬웠고, 빨랐고, 편리했고, 쾌적했다며 침이 마르도록 지하철 자랑을 늘어놓았다. 교통 체증이 일상인 도로와 너무나 대비됐다고 덧붙였다.
"도로를 넓힐 게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늘리는 게 맞지 않나요?"
도로 확장 공사 중인 곳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단지와 공영 주차장은 물론, 도로변마다 통행에 방해가 될 만큼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을 보면서 한마디씩 얹었다. 출퇴근 때만 쓰고 종일 가만 세워둘 차가 왜 필요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
아이들은 서울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우리나라의 '이상한' 교통 대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달았다.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차를 줄이기보다 도로를 넓히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필요 이상으로 차가 많다는 것에 토를 다는 경우는 없었다.
한강과 지류의 천변을 제외하면 도로 위에 자전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워했다. 사는 아파트가 강을 끼고 있지 않으면 애초 자전거를 이용할 수가 없는 것 같다며, 서울을 '자동차 친화형 도시'로 규정했다. 자전거는 운동 도구일 뿐 교통수단일 수 없다는 뜻이다.
"등하굣길 뻔히 막히는 줄 알면서도 죄다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교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래 놓고선 담임선생님께는 길이 막혀 지각했다고 핑계 대는 게 황당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차가 막혀 지각했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이렇게 무질렀다.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라는 거다. 학교에서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데 살면서도 부모님의 차로 등하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구들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등하굣길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애꿎은 학교에까지 민원을 제기한다. 서둘러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거다. 실상 그들의 요구는 왕복 2차선인 도로를 넓혀 달라는 것으로 수렴된다.
누구 하나 자녀를 자가용으로 등교시키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가용 등교를 '고정 상수'로 여기다 보니, 도로를 넓히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심지어 버스의 배차 간격을 좁히는 등의 대중교통 확충 대책은 교통 체증을 더욱 가중시킨다며 반대할 정도다.
도로에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급기야 학교에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그어져 있긴 하지만, 등하굣길엔 있으나 마나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차에 부딪히거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고,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자전거는 맨 꼴찌다. 지방의 도시에서조차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처지다. 도시 내에 자동차 정비소나 용품점, 타이어 판매점 등은 곳곳에 있지만, 자전거 수리점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이상한' 교통 대책의 악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