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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자 직접 파라오 된 여성, 이집트 번영을 일구다

[문명의 요람 이집트를 가다-9] 신전도 웅장하고 위대한 하트셉수트

등록 2024.11.20 09:32수정 2024.11.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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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장제전 열기구에서 바라본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풍경
하트셉수트 장제전열기구에서 바라본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풍경운민

왕가의 계곡을 제외하고는 나일강 서안지역의 유적들은 지근거리에 있어 더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도보나 자전거로 충분히 가능하다. 저마다 다른 색채를 지니고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는 고대 신전과 무덤들을 모두 둘려보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만큼 그 유적의 양이 풍부하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멤논의 거상부터다. 룩소르를 방문하는 모든 단체 여행객들은 이곳을 필수 코스로 방문하는데, 서안 유적 중 유일하게 무료이기도 하고 시선을 압도할 만큼 거대하다.


우리가 알려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명칭 중 그리스어에서 전파된 것이 많다. 그리스인을 통해 로마와 서방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와 마찬가지로 멤논의 거상 또한 그리스인들이 이 석상을 보고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한 멤논을 생각했기에 그 이름이 고착된 것이다.

기원전 27년 지진으로 금이 생겨 두 개의 석상 중 하나에서 해 뜰 때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를 두고 그리스인들은 멤논이 어머니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인사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이집트에서도 독특한 건축과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이집트에서도 독특한 건축과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운민

사실 이곳은 8 왕조 아멘호테프 3세의 장례신전으로 나일강 범람으로 대부분 허물어져 석상만 수많은 관광객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왕가의 계곡에 버금가는 왕비의 계곡으로 떠나보기로 한다. 신왕국 시대의 왕비와 왕자, 공주 등 왕실가족의 묘역이 자리한 곳이다.

특히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의 무덤은 모든 이집트의 무덤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보존상태가 훌륭하기로 손꼽힌다. 왕비의 계곡 입장료와 별도로 약 7만 원에 달하는 입장료와 관람시간도 10분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고 여겨진다. 필자가 방문했을 땐(2024년 8월) 수리를 위해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만 느껴졌다.

람세스 3세의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들 왕비의 계곡에 위치한 람세스3세 왕자의 무덤에서는 파라오의 손을 잡는 어린 아들이 벽화로 남겨져 있다.
람세스 3세의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들왕비의 계곡에 위치한 람세스3세 왕자의 무덤에서는 파라오의 손을 잡는 어린 아들이 벽화로 남겨져 있다.운민

왕비의 계곡 다른 무덤들의 벽화들이 대부분 색이 바래고 훼손되어 있어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람세스 3세의 아들들의 무덤에서는 또 다른 감동이 다가왔다. 어릴 때 죽은 왕자의 앳된 손을 잡고 직접 파라오가 신들에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벽화를 보니 아버지의 부성애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제 왕가의 계곡에 이어 나일강 서쪽의 가장 하이라이트 하트셉수트 장제전에 갈 차례다. 장제전은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르기 위한 신전이다. 대부분의 파라오가 이른바 장례신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거나 폐허로 변한 곳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예외다. 하트셉수트는 이복형제이자 남편인 투트모세 2세가 죽자 직접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의 번영을 반석 위에 올려났기에 이곳의 장제전은 웅장하고 위대하다. 그녀가 장례신전으로 점찍은 자리는 원래 중왕국 11 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의 장례전과 무덤이 함께 자리한 곳이었다.


게다가 여왕 이후 파라오의 자리를 다시 쟁취한 의붓아들 투트모세 3세는 그녀의 흔적을 지우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이곳을 가리켜 데이르 엘 바흐리라 부르기도 한다.

오시리스 모습을 하고 있는 하트셉수트 오시리스신의 모습을 띄고 있는 하트셉수트 조각
오시리스 모습을 하고 있는 하트셉수트오시리스신의 모습을 띄고 있는 하트셉수트 조각운민

하트셉수트의 장례전은 건물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지만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바위산의 위엄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매표소에서 카트를 타고 입구로 오니 광화문의 해태상처럼 신전을 양쪽에서 호위하고 있는 스핑크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3개의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는 장제전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자리한 2층부터 본격적인 관람이 진행된다. 사각기둥이 두줄로 서 있는 공간을 차분히 살펴보면 파라오와 신들이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조에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남서쪽에 새겨진 폰트 지역으로의 원정이 담긴 부조가 유명하다.

3층으로 올라오면 기둥돌마다 5미터의 오시리스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상을 살펴보면 여성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는 하트셉수트의 모습으로 파라오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가짜수염을 붙였다 한다. '하트셉수트' 이름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다.

열주를 지나 중정으로 들어오면 가장 안쪽 공간인 아문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생각보다 공간은 소박했지만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는 벽화는 필자의 눈을 충분히 호강하게 했다.

하지만 하트셉수트 장례전은 근래에 큰 아픔을 겪었다. 1997년 11월 테러단체 알-이슬라미야가 경비원을 죽이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던 탓이다.

이곳은 신전 말고는 피할 나무나 숲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 62명이나 달하는 인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이집트의 여행지마다 중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상주하게 되었다.

장례전의 비극은 온데간데없고 이 사실을 모르는 듯 관광객은 저마다 들뜬 얼굴로 신전을 경외하듯 돌아본다. 여기서 일직선으로 나일강 동편의 카르나크 신전까지 이어져 해마다 이 길을 따라가는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카르나크 신전에 봉헌된 아문신상을 들고 배를 타고 행렬이 이어졌다고 하니 당시로선 정말 장관이었을 것이다.

람세스 3세의 신전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 하부신전이라고 한다. 나일강 서안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람세스 3세의 신전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 하부신전이라고 한다. 나일강 서안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훌륭하다.운민

이제 서안의 마지막 목적지인 하부신전으로 이동해 본다. 람세스 3세 장례신전으로 서안에서 보존상태가 훌륭한 곳 중 하나다.

람세스 2세와 혈연관계가 없는, 다음 왕조의 파라오였단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위대한 파라오로서, 유럽과 중동을 휩쓸었던 바다민족의 침략도 막아낸다.

그러나 그도 이집트의 쇠퇴는 막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둘째 왕비와 아들에게 시해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현재 그의 미라에는 도끼와 칼로 난자당한 흔적이 남아있다.

화려한 그의 신전을 보며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인생무상이라는 사실을 한번 깨닫는다. 다시 나일강을 건너 동안으로 떠나보기로 하자.
#운민 #이집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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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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