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으로 가는 길수운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새 세상이 올 것이라 내다봤다. 수운 대신사의 정신은 결국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으로 촉발된다.
박홍규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대도를 펼친다
수운 선생은 자신의 동학에 대한 정론은 완전 무시되고, 사사로운 요술이나 부려 백성을 현혹하는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한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수운 선생은 온갖 고문과 악형, 조작된 심문 내용, 사술의 주문, 반역의 검무, 서학으로 모함, 제자들이 고문에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하늘이거늘 어찌 하늘을 고문하는가. 하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수운은 결국 육신은 죽지만 정신은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다.
경상 감사 서헌순 등 심문관이 묻기를, "최복술의 사술과 역모 죄는 백일하에 드러났다.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양곡과 무기는 어디에 숨겼느냐? 이제 모든 사실을 고하고 죄를 인정하라" 하였다. 수운 선생은, "나는 잘못한 것도 죄도 없소이다. 내가 주창하는 것은 백성들을 지키고 살리기 위한 '보국안민, 척양척왜,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도의를 펼치는 것이외다" 하였다. 이에 "저놈의 입을 막아라!" 하며 고함을 지르자, 힘센 병졸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주리와 곤장, 압술 등 온갖 악형을 가한다.
덕을 온 천하에 펴라
백성을 널리 구제하라
나라를 바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서양과 일본세력을 거부하여 물리쳐라
수운 선생의 공초 즉 심문과 고문이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순간 천둥 벼락 소리 즉 우렛소리가 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에 감사와 목사, 현감 등 입회한 관리는 물론 수운 선생의 제자들까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상 감사 서헌순이, "아니, 어디서 나는 소리이기에 어찌 그리 큰가?" 하니, 나졸이 고해 말하기를, "죄인의 넓적다리가 부러졌습니다" 하므로 즉시 심문을 멈추고 형리에게 하옥하도록 했다. 그리고 수운 선생의 제자들이 다시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도 기록된 공술서는 수운 선생의 정론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사술과 무속은 물론 광신도 집단으로 왜곡하여 공술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반역의 모함으로 식량과 병장기, 군대 편성 등에 대해서도 캐물은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사설(邪說)을 퍼트렸다는 것으로 천신 즉 귀신이 강림하여 서양인이 온다느니, 공을 세워 고관이 된다느니, 하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동학의 중요 가르침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등 경전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고 간간이 제자들의 진술내용을 악용하여 기록하였다.
특히 동학의 핵심이라는 주문(呪文)에 대해서도 수운 선생이 지은 <동경대전>, <논학문(동학론)>에 자세히 설명한 것은 하나도 거론하지 않고 도술 즉 사술을 부리는 주문처럼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날 마지막 심문이 끝나고 해가 저물자 곽덕원 도인이 밥상을 들고 찾아가 수운 선생의 모습을 뵙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수운 선생은 곽덕원에게 두 가지 심부름을 부탁한다. 하나는 해월에게 관으로부터 붙잡히지 않게 멀리 도망가는 것이요, 하나는 시 한 수를 전하라는 것이었다.
높이 날아 멀리 나아가라
수운 선생이 곽도인에게, "최경상(최시형)은 지금 대구 성 안에 있는가? 곧 병사들이 잡으러 갈 것이니 '높이 날고, 멀리 뛰어라'고 전하라. 만약 잡히면 동학의 미래가 위태롭게 된다. 힘들겠지만 나의 부탁을 꼭 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곽덕원은 "해월 선생은 이미 떠났습니다. 차후 뵙게 되면 반드시 전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수운 선생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시 한 수를 읊으며, 이 시를 반드시 해월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高飛遠走고비원주, 높이 날아 멀리 나아가라"
수운 선생이 후계자 해월에게 남긴 마지막 명교는 멀리 도망가라는 뜻도 있지만, '천도 동학을 높이 올리고, 멀리 전파하라'는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수운 선생의 최후 유시는 자신의 무죄를 강조하며, 순도로써 정신적인 힘이 되어 천도 동학을 마른 기둥처럼 영원히 떠받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 최후의 유시)
燈明水上無嫌隙 등명수상무혐극
柱似枯形力有餘 주사고형역유여
등불이 물 위에 빛나니 전혀 틈새가 없고
기둥이 마른 것 같으나 힘은 남아 있도다.
1864년 3월 2일 의정부에서 최제우 사형에 대한 판결을 결정한 내용을 살펴보자.
고종실록 1권, 고종 1년 3월 2일 임인 1번째 기사 1864년 청 동치(同治_청나라 연호) 3년 동학 두목 최복술(최제우)을 참형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