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지난 1월 24일 선고한 부산 집단 전세사기 사건 피고인의 1심 판결문. '배상명령신청'을 한 피해자들의 사건번호로만 판결문 첫 쪽이 가득차 있다.
소중한
사건번호로만 판결문 첫 장이 가득 찼다. 빼곡한 사건번호는 수많은 피해자를 상징했고 그들의 눈물처럼 판결문 첫 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180억 원의 전세사기를 벌인 최아무개(54)씨의 1심 판결문은 이렇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판결문을 쓴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형사1단독)는 피해자들의 눈물에 응답했다. 박 부장판사는 사건번호에 가려진 실제 피해자들을 소환했고 그들의 탄원서 하나, 하나를 '양형 이유'에 담았다.
별지를 제외한 총 29쪽의 판결문 중 양형 이유만 15쪽에 달했다. 보통의 양형 이유는 길어야 1~2쪽 분량인 데 반해 이 판결문은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와 피해자 개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피고인의 일방적 주장을 왜 받아들여선 안 되는지, 우리가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자칫 놓치고 있지 않은지 등의 반추가 판사의 매서우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꼼꼼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