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왜창의, 다시 보국안민이다

[동학대서사시, 모두가 하늘이었다 21]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동학교조 수운선생의 최후

등록 2024.11.20 18:39수정 2024.11.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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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상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된 수운 선생 동상은, 수운 대신사 순도(순교)100주년을 기념해서, 1964년 3월 10일 천도교에서 세웠다.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가슴에 얹은 모습은 하늘이 가슴 즉 마음에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설명해서 시천주, 인내천을 상징하는 수운 선생의 사상이 깃든 동상이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상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된 수운 선생 동상은, 수운 대신사 순도(순교)100주년을 기념해서, 1964년 3월 10일 천도교에서 세웠다.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가슴에 얹은 모습은 하늘이 가슴 즉 마음에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설명해서 시천주, 인내천을 상징하는 수운 선생의 사상이 깃든 동상이다.동학혁명기념관

수운 선생에 대한 생생한 증언

수운 선생의 평소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한 기록이 있다. 동학 연구가요, 천도교 이론가인 소춘 김기전의 기록을 말함이다. 김기전은 1927년 7월 17일, 수운 선생을 친히 모셨던 수양녀인 주씨를 찾아가 일문일답 형식으로 스승의 모습은 물론 생활태도나 평소 언행 등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1927년 8월 『신인간』 통권 15호에 발표하였다.

당시 주씨 할머니는 81세로 귀와 눈이 어두운 상태였으나, 김기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수운의 평소 모습과 언행에 관한 생생한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상당한 분량의 전체 내용보다는 김기전이 1시간 이상 기록한 것 중 직접 간추려 요약한 6개의 내용에 현대용어를 첨가하고 약간의 설명을 붙여 여기에 싣는다.

1. 수운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 듣던 바와 같이 중간 키에 눈이 무섭게 빛나고 코끝이 높고 분명하며, 쳐다보기에 누구나 전율을 느꼈다는 것(수운 선생의 체구와 눈빛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라 생각함).

2. 평상시에 잔소리는 물론 항상 말이 없는 편이고, 사람과 물건을 대할 때 정중하여 집안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매로 때리거나 꾸지람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수운 선생의 과묵한 언행과 해월 선생의 그 유명한 대인접물(待人接物)의 법설이 수운 선생의 가르침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음).

3. 평소 대부분 어디에 나가 계시고 집에 있지를 않았으며, 집에 계실 때에는 무슨 책을 그렇게 보시는지 낮이고 밤이고 늘 책을 보고 계셨다는 것(수운 선생께서 관의 지목과 탄압으로 거의 집에 안 계셨다는 것과 득도 전후에 책을 많이 보셨고, 글도 많이 쓰셨다는 것에 맞는 말씀으로 이해됨).

4. 경신(1860년) 4월 득도 후, 수운 선생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선생의 부인이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박 씨 부인께서는 마지막이라며 자주 용담의 물에 빠져 죽으려고 달려가곤 했는데, 수운 선생께서 친히 붙들어 말리며 설득했다. 그러나 약 한 달 후에는 그렇게 싫어하며 몸부림치던 부인이 그만 풀솜이 되어 수운 선생에게 절대 귀복되었다.


그 후 사방에서 손님이 밤낮으로 용담에 오시어 부인과 주씨는 손님 밥 짓기에 손목이 빠지는 듯하였으나, 부인은 불평하지 않고 따랐다는 것(수운 선생이 자신의 부인을 설득하여 제일 먼저 입도시키고, 본격 포덕에 나섰다는 점이 사실로 증명됨).
5. 수운 선생께서 양녀인 주씨에게 늘 '글을 배워라.' 하신 것을 글이 어려워 피했더니 지금은 후회가 된다는 것(수운 선생께서는 신분과 남녀를 가리지 않고 글 공부를 시키려 하였다는 것으로 이해됨).

6. 그 어른(아버님)께서 한 번 가신 후 다시는 그 어른 비슷한 사람을 대할 수가 없다는 것(수운 선생처럼 잘생긴 사람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이며, 또한 인격으로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었던 존경과 그리움의 표현임).
수운 선생의 수양녀 주씨는 수운 선생의 순도 후 역시 쫒기는 몸이 되어 온갖 고생을 하다가 말년에 수운 선생의 고향인 마룡동 근처에서 근근이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운님의 눈빛에서 인격과 학문을
수운님의 언행에서 사랑과 희생을
수운님의 진리에서 자비와 대각을
수운님의 개벽에서 계시와 평화를
수운님의 실천에서 개혁과 혁명을
아, 위대하고 거룩하여라!
보통 사람들의 지극한 평범함을,
사람이 하늘이라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만물이 하늘이라는
만물 대하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모두가 하늘이었다는
수운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수운과 같이 사는 자연만물은
모두가 하늘이었다.
다 같이 하늘이었다.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수운 최제우 선생 순도비는 2017년 5월 26일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추진위원회에서 수운 대신사 순도지 인근 대구시 중구 덕산동 현대백화점 앞 인도 대로변에 세웠다.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수운 최제우 선생 순도비는 2017년 5월 26일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추진위원회에서 수운 대신사 순도지 인근 대구시 중구 덕산동 현대백화점 앞 인도 대로변에 세웠다.신인간

수운 선생의 일대기를 마치면서

수운 최제우 선생 일대기를 마치면서 선생의 짧은 시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偶吟우음
風過雨過枝 風雨霜雪來
풍과우과지 풍우상설래
(바람 지나고 비 지난 가지에
바람 비 서리 눈이 오는구나.)
風雨霜雪過去後 一樹花發萬世春
풍우상설과거후 일수화발만세춘
(바람 비 서리 눈 지나간 뒤
한 나무에 꽃이 피면 온 세상이 봄이로다.)

우음(偶吟)은 문득 시를 얻었다는 뜻이다. 비와 바람이 지나고, 또 서리와 눈이 내리는 시련과 고통을 겪은 뒤에 꽃이 피는 봄과 같은 기쁨의 시절이 온다고 하였다. 수운 선생 자신과 천도·동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다. 또한 그 어떤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춘삼월호시절의 낙원세상을 염원하는 뜻에서 시를 지어 발표하신 것으로 조심스럽게 해석해 본다.

[목판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박홍규 화백이 2021년 목판화로 그린 명작이다. 갑오년 일본군 침략에 맞선 동학의병들의 처절한 항쟁을 대변해 주는 판화이다.
[목판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박홍규 화백이 2021년 목판화로 그린 명작이다. 갑오년 일본군 침략에 맞선 동학의병들의 처절한 항쟁을 대변해 주는 판화이다.박홍규

다시 보국안민이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前) 1894년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이 일어났다. 당시 동학이 내세웠던 첫 번째 실천이념이자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갑오동학혁명 때나 오늘 날 행해지는 기념식과 재현행사에서도 가장 선두에 펄럭이는 깃발과 선창구호가 보국안민이다. 그 다음으로 제폭구민(除暴救民)·광제창생(廣濟蒼生)·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등이 줄을 잇는다.

이처럼 동학혁명에서 상징적 이념, 캐치프레이즈의 깃발이 된 보국안민의 어원을 먼저 살펴보고 무슨 뜻이 담겨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보국안민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130년 전의 시대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또한 현재의 위기상황을 역사에서 지혜를 찾아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것에 있다.

보국안민의 어원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동학(東學)의 상징이념인 보국안민의 어원은 수운 대신사 최제우(水雲 大神師 崔濟愚)로부터 시작된다. 동학 1세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포덕 1년(1860) 경상도 경주 용담정(龍潭亭)에서 동학을 창도하였으며, 이듬해 1861년에 지은 동경대전(東經大全)_포덕문(布德文) 내용 중에 [輔國安民計將安出_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를 한탄하며 거론하였다.

그 후 수운 선생께서 관과 지배층들의 탄압에 의해 전라도 남원에 오시게 된다. 당시 조선왕조사회는 왕이 천자(天子)라 하여 하늘을 대행한다는 절대 권력으로 백성을 통치하였으며,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별이 완고하였다.

그런데 수운 대신사께서 시천주(侍天主,사람에게는 한울님이 모셔져 있다.)하여, 사람과 하늘이 둘 아닌 하나라는 인즉천(人卽天,사람이 곧 하늘)이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하라는 인권(人權)을 천권(天權)으로 선언, 반만년 역사에서 신분차별이 무너지는 인간존중의 평등시대를 열었다.

이는 개벽(開闢)이요 혁명(革命)과 같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관리와 지배층의 탄압은 불 보듯 빤한 상황이었다. 수운 선생께서 보수성이 강한 경상도 경주를 떠나 개혁성이 강한 전라도 남원 땅에 오신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수운 선생께서 1861년 12월(음력) 중순에 남원에 도착하여 12월 말부터 1862년 5월 중순까지 교룡산성 선국사 암자인 덕밀암(德密庵)을 은적암(隱蹟庵)이라 부르고 은거하신다. 이때 지은 경서들은 권학가(勸學歌), 도수사(道修詞) 동학론(東學論,논학문_論學文) 등 동학경전의 핵심을 이룬다. 은적암에서 1월초에 지은 권학가 내용 중에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꼬'라는 말씀이 나온다.

당시 안으로는 조선왕조체제와 국교인 유교(儒敎)의 지배이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밖으로는 서양세력과 일본(日本)의 침략에 대한 절박한 위기상황이었다. 권학가에 보국안민을 재차 강조한 다음 바로 전주에 오셔서 동학을 포덕(布德)하신다. 수운 대신사께서 남원을 중심으로 전주 등 호남지역을 순회하면서, 그 유명한 동학혁명군의 군가와 훈련 때 쓰인 칼노래를 지어 칼춤을 행하셨다. 이는 1894년 동학혁명이 전라도에서 기포한 역사적인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보국안민은 자주적 평화통일에서 찾을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보국안민(輔國安民,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으로 되어 있다. 이런 해석은 넓은 의미로서 많은 해석 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진정한 의미의 보국안민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으로 나라를 돕고,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모든 제도를 없앤다. 둘째-외적들의 침략에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의 피해가 없도록 보살핀다. 셋째-세계 각 나라들은 자주적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인류평등에 입각하여 각자 백성들을 편안하게 모신다. 이런 의미를 부여해야 진정한 보국안민을 설명할 수 있다.

현재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진정 보국안민의 계책이 코앞에 닥쳐왔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으며, 북한은 핵무장으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북한군 파병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담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이란 이유로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의 반대에도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의 법률개정을 묵인하였다. 일본은 헌법을 개정하여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한반도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최근에 한·미·일 동맹으로 나아가는 것과 북·중·러의 동맹으로 나아가는 쌍방 삼각동맹은 분단된 우리나라에 있어 다시 신(新) 냉전시대(冷戰時代)에 본격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북은 물론 세계대전이 일어날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밀착된 외교관계는 앞으로 군사훈련 등 일본의 과거사 반성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것에, 바로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국제정세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보국안민을 논한다면 남북의 자주적·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된다는 것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국권침탈에 동학의병은 독립전쟁으로 맞섰다. 동학농민혁명 2차 기포는 바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 점령 즉 국권침탈에 맞서 척왜(斥倭), 동학·천도교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崔時亨)의 동학군 총기포령에 의한 전봉준(全琫準) 대장과 손병희 통령의 양호의병창의군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대일항쟁 즉 독립전쟁(獨立戰爭)을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일본의 조선 식민지 침략전쟁에 의해 수십만의 동학의병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임진왜란과 갑오왜란의 주범 일본과 군사동맹 운운하는 것은 잘못하다간 망국이라는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오늘 날 다시 보국안민을 외칠 수밖에 없다.

동학·천도교(東學·天道敎) 3세 교조이며, 동학혁명군 대통령과 3.1독립운동 영도자 의암성사(義菴聖師) 손병희(孫秉熙)는 도전(道戰) 즉 진리와 사상전, 재전(財戰) 즉 경제와 무역전, 언전(言戰) 즉 정치와 외교전의 삼전론(三戰論)이 보국안민의 계책이라 말씀하였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지난 역사 속에 지혜를 찾아 보국안민의 현명한 대처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모두 직시해야 한다. 독립운동지도자이자, 동학·천도교 제4세 대도주 춘암상사(春菴上師) 박인호(朴寅浩)는 '참에 살고 거짓에 죽는다.'고 말씀했다. 다시 말씀드려, 보국안민의 참다운 정신에 살고,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거짓에 죽는다는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야 한다. 따라서 동학의 보국안민 정신은 지금 다시 등장해야 된다. 다시 보국안민이다.
덧붙이는 글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
#동학 #천도교 #동학혁명 #동학농민혁명130주년 #수운최제우선생탄신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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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또 현(現)천도교선도사·직접도훈, 전(前)전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전(前)전주민예총 고문, 전(前)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등 종교·환경단체에서 임원을 엮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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