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역사에서 여성을 배제시켰나?

[신간] 리안 아이슬러 <성배와 칼>

등록 2006.11.28 15:01수정 2006.11.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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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와 칼> ⓒ 비채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종교 신화 가운데 유명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뱀이 이브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그 결과로 오늘까지 인류는 타락과 징벌의 구덩이로 내몰렸다는 이야기다.

그냥 순수한 호기심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나면 두어가지 도발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뱀은 왜 하필이면 아담이 아닌 이브에게 접근했을까? 이브가 지식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뭐 대단한 일이기에 에덴에서 추방당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우선 인간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전쟁과 폭력, 파괴로 얼룩져있다. 이런 것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폭력과 파괴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본다면, 그리고 그동안 감추어진 역사적 사실을 들추어 본다면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수 만 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중에서 전쟁의 역사는 고작 몇 천 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신석기 시대 말에서 청동기 시대 초기, 전쟁의 역사는 이 무렵에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선사시대에는 전쟁이란 것이 인간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인류학이나 고고학으로 증명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평화롭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전쟁이 시작된 원인은 무엇일까? 왜 지금까지 국가와 민족은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일까? 그리고 이런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다시 평화를 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리안 아이슬러는 그녀의 저서 <성배와 칼>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책의 제목 <성배와 칼>에서 볼 수 있듯이 리안 아이슬러는 대립되는 두 개의 상징을 통해서 인류역사를 물들인 파괴와 전쟁, 그 이면에 숨겨진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성배'는 여성과 공존, 평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칼'은 남성, 정복과 폭력을 상징한다. 남녀가 함께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던 고대의 공동협력사회는 '성배의 문화'가 주도적인 사회였다. 성배의 문화가 주도적이던 고대사회에서는 전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회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칼의 문화'로 상징되는 지배중심사회의 침입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인류는 공동협력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끝없이 싸우면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리안 아이슬러는 이런 지배중심사회가 계속 이어지고 더욱 견고해지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성중심의 지배사회가 조직적이고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역사와 현실에서 여성의 문화를 배제하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을 꾸준히 억압한다면, 평화로운 세상도 요원한 일 아닐까. 문제는 남성이라는 성이 아니다. 지배 중심 체제에 길들여져 사회화되어가는 남성과 여성이다.

저자는 역사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왜곡되고 조작되었는지, 그리고 칼의 문화에 맞게 변조되었는지 서술한다. 구약성서의 여러 부분에서 얼마나 히스테릭하게 여성을 미워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지 예로 들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주류에서 배제시키고, 여성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차별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은 댄 브라운이 그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쓸 때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 이후로 남성 중심의 지배사회는 다양한 상징조작을 통해서 여성을 소외시키고 있다. 중세에 마녀사냥이 유행했던 이유도, 마녀가 사는 숲에서 길을 잃는 어린아이에 관한 동화도 모두 이런 조작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신'하면 떠오르는 복수의 신, 전쟁의 신도 이런 조작의 결과다. 고대사회에서 여신은 위대한 어머니 여신, 풍요와 평화를 상징하는 신이었다. 남성중심의 사회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기 위해서 폭력과 연관된 복수의 신, 전쟁의 신을 모두 여성으로 대체시켰다.

다시 에덴동산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에덴동산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 아담과 이브는 물론 남성과 여성을 상징한다. 고대사회에서 뱀은 여신에 대한 예언과 신탁의 상징이다. 생명의 나무, 지식의 나무도 여신의 상징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권력을 가진 남성의 상징이다.

이걸 이해하고나면 뱀이 왜 최초의 여성인 이브에게 접근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브가 여신의 상징인 지식의 나무에 접근해서 선악과를 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신에 대한 상징인 뱀이, 난데없이 등장한 남성 권력자 '아버지'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라고 이브를 유혹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노해서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추방한다. 이브에게 더 가혹한 형벌을 내린 채.

이 이야기는 '성배의 문화'에서 '칼의 문화'로 주도권이 넘어오는 과도기에 관한 우화다. 그 과도기에 수반되어야하는 이념적 변화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이념적 의미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배와 칼>의 저자인 이안 아이슬러는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때는 나치 정권을 피해서 쿠바로 이주하고 14살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했다. 저자는 어린시절에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왜 인간은 저토록 잔인한 걸까? 왜 평화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는 걸까?" 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다. 그리고 그 산물이 바로 <성배와 칼>이다.

<성배와 칼>은 초판이 발행된 이후에 전 세계 20여 개 국에 번역된 책이다. 인류학자 애슐리 몬테규는 이 책을 가리켜서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이안 아이슬러가 바라본 현대사회도 역시 칼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저자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물론이고, 미국의 제리 파웰과 이란의 호메이니 역시 마찬가지의 시각으로 비판한다.

그래도 저자는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전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 등이 그런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가 지배중심사회이기는 하지만, 이런 운동들은 공동협력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속적인 끌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5000년이 넘게 '칼의 문화'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성배의 문화'를 꿈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바라고 노력한다면 전쟁보다는 평화를, 파괴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할수 있는 그런 사회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이다.

덧붙이는 글 | 리안 아이슬러 지음 / 김경식 옮김. 비채 펴냄.

덧붙이는 글 리안 아이슬러 지음 / 김경식 옮김. 비채 펴냄.

성배와 칼 - 여성의 관점으로 본 인류의 역사, 인류의 미래

리안 아이슬러 지음, 김경식 옮김,
비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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