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9 11:21최종 업데이트 23.09.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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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샤르트르 성당 전경 ⓒ Olvr

 
유럽여행을 할 때 빠지지 않고 들르게 되는 곳이 바로 성당이다. 특히 하늘 높이 치솟은 첨탑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인 고딕 성당은 여행의 백미 중 하나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북프랑스에서 탄생해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래서 파리를 비롯해 샤르트르, 아미앵, 랭스, 루앙 등 일드프랑스 지역의 대성당 대부분이 12~14세기에 지어진 고딕 성당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성당들이 공통적으로 '노트르담(Notre-Dame, '성모 마리아'를 지칭)'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즉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라는 점이다. 이 성당들은 성모 마리아 도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성모의 이미지가 성당 입구에서부터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하는 것은 이전 시기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다. 그런데 중세의 프랑스는 왜 이토록 성모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만큼이나 성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이고 섬겼던 것일까.

우선 고딕 대성당이 일드프랑스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프랑스의 왕권 강화기와 일치한다. 루이 7세(1120-1180, 재위 1137-1180)와 그 뒤를 이은 후기 카페 왕조(Dynastie des Capétiens)는 왕령이었던 일드프랑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원 건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교권과 손잡은 왕권은 교회의 지지와 민중의 호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얻으며 왕권 신장을 꾀할 수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인도자, 성모 마리아

한편 그리스도교에서 성모 마리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죄 없이 태어난 유일한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신앙의 어머니'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성모 공경 문화가 널리 확산된 것은 유럽 사회 전체가 '구원'이라는 종교적 열망에 휩싸이게 되면서부터다.

최후의 심판이 두려운 이들에게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존재는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였다. 성지순례를 신앙심의 척도로 여기고 이교도로부터 그리스도교 문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을 감행했던 중세인들에게 성모 마리아는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천국행을 도와주는 중재자이자 신앙의 모범이었다. 일드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 이미지는 이러한 믿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프랑스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 성당에 전시된 성모 마리아의 베일. ⓒ Rama

 
성모가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는 계시를 전해받을 때 입었다는 베일이 보관되어 있어 유명한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는 성모 성지의 중심지이자 중세 고딕 건축의 정수다.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는 성당 정문에서부터 볼 수 있다. 성당의 출입구 상단을 장식하는 반원형의 아치 공간을 팀파늄(tympanum)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의 옥외 광고판과 같은 역할을 했다. 성직자 이외에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민중은 성당 안팎을 장식하는 미술작품을 통해서 성서의 내용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특히 성당 주출입구를 장식하는 팀파늄에는 성삼위일체와 성육신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를 시각화한 조각들로 꾸며졌는데, 이것은 성당에 들어설 때뿐만 아니라 성당 앞을 오갈 때마다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 성당의 서쪽 문을 장식하는 팀파늄 ⓒ NDC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 성당의 서쪽 문 우측 팀파늄에 새겨진 ‘지혜의 권좌’.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가 함께 등장한다. ⓒ NDC

 
샤르트르 대성당의 팀파늄에서 성모 마리아는 천상의 왕관을 쓰고 아기 예수를 무릎 위에 앉힌 채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이를 라틴어로 '세데스 사피엔티아에(Sedes Sapientiae)'라고 부른다. '지혜의 옥좌(Throne of Wisdom)'라는 뜻이다. 성모 마리아를 아기 예수를 보위하는 존재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성서 속에서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의 '옥좌'에서 비롯된다. 구약성경의 11번째 책인 열왕기 상권에서 솔로몬의 왕좌는 상아에 금을 입힌 보좌로 묘사된다. 성서에 따라 솔로몬 왕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antitype)로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한 지혜의 육화(Incarnation)로, 그를 무릎 위에 앉힌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지혜의 옥좌로 해석된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북측 장미창 스테인드 글라스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 역시 아기 예수와 함께 권좌에 앉아있다. ⓒ PtrQs

 
샤르트르 대성당의 내부를 다채로운 색으로 밝히는 스테인드 글라스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지혜의 옥좌로 등장한다. 금빛 왕관을 쓰고 청색의 성의(聖衣)를 입은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천사들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의 도상의 등장은 그의 위상이 교회 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새 천년을 앞두고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표현에 집중했던 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중세의 또다른 발명품, 마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면 성모 마리아의 도상은 확연히 달라진다. 천상의 여인 대신 자애로운 어머니로 묘사된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에 따라 신성성 대신 인간성이 강조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자상을 보면, 성모 마리아는 마치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살피는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옥좌에서 내려와 지상에 발을 내딛는 작고 어린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목초지의 성모>(1505)

 
오늘날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모여드는 순례객이, 코로나 사태 이전을 기준으로, 매일 삼만명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손상없이 보존된 기적의 성유물인 성모의 베일을 직접 보고 축복받기 위해서다. 성당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 12세기 말부터니 무려 800년이 넘도록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흥미롭게도 성모 공경 문화가 확대된 중세는 '마녀'가 발명된 시대이기도 하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마녀는 성모 마리아와 대조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다. 처녀의 몸으로 오직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평생 '동정녀'로 남은 성모 마리아는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된 여인'으로 공경받았다.
 

프랜시스 고야의 <마녀들의 안식일>(1789) ⓒ Goya

 
이에 반해 마녀는 더이상 출산 능력이 없는 사악하고 추한 노파로 그려진다. 악마와 결탁해 못된 주술을 걸어 남성과 사회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마녀는 음욕의 요부로 적대시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마녀는 페미니스트가 선택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20세기 후반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와 교회가 지닌 상징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프랑스의 선구적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1949)에서 성모 공경 문화란 남성성이 거둔 위대한 승리의 상징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성이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지배문화의 믿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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