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4 12:14최종 업데이트 24.08.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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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6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9일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총력전을 위해 부총리급의 부처까지 신설한다고 했다. 새 부처의 장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며 각별히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인구 감소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전면전에 나섰다. "저출생이 핵폭탄보다 무섭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경상북도가 대표적이다. 경북도는 저출생 극복본부를 만들어,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하고 100대 실행과제를 발표했다. 50여 년 전 가족계획이 한창일 때 부서별로 인구억제 대책을 마련했던 것처럼 경쟁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청 모든 부서가 동원되어 저출생 극복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모양새다.

지역 공공인프라를 활용해 아이 돌봄을 제공하는 K-보듬센터도 있고, 연애와 결혼이 필수 아닌 선택이 된 세대의 혼인을 권장하는 매칭 이벤트도 포함했다. 직접 결혼정보회사 노릇을 자처하며 나선 경북도는 커플들에게 해외 유람선 여행까지 약속했다 한다.

다소 기이해 보이지만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정부의 우려에는 진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국가비상사태에 '범국가적 총력 대응'이라니, '스파르타 멸망'이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내내 감소세였다. 인구가 유지된다는 합계출산율 2.1보다 낮아진 건 무려 1983년 전두환 정권 시기였다. 2024년의 비상사태선포가 난감해지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총력을 다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고작 인구 유지와 대한민국의 지속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거듭된 저출산 정책 논란에서 얻은 교훈

2016년 가임기 여성 분포를 추적한 행정안전부의 출산지도, 2017년 여성의 하향혼을 유도하자는 국책연구원의 제안, 2024년 남녀 간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여아 초등학교 조기입학 정책... 도저히 웃어넘기기 어려운 정부의 저출산 정책 논란을 거듭 거치며 숙고했다면 도달했어야 할 교훈이 있다.

첫째, 합계출산율 반등같이 어떤 특정한 정책 목표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달리다 보면 그 끝에는 종종 폭력과 차별이 기다린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과 입장을 헤아리기 힘들 때는 특히 그렇다. 저출생 정책에서 이는 특히 여성의 인권과 관련이 깊다.

둘째, 어떻게든 사람들이 아이를 좀 더 낳게 하자는 협소한 접근은 이제껏 실패를 맛봤고 적잖은 조롱과 반발에 부딪혀왔다. 한국 정부에는 이미 국가폭력에 가까운 인구통제를 감행했던 업보가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인구 정책을 솔직하게 반성하고, 아이 낳고 키우며 살만한 사회의 조건을 더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도, 사회의 변혁을 기대하는 사람도 저출생과 고령화를 핵심 조건으로 고려해야 한다. ⓒ 셔터스톡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일자리와 사회보장 등 여러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한국의 초저출산은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을 만큼 심각하며, 국가 운영과 정책 같은 거시적 사안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일상이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빠르게 변화 중인 가족과 친밀성의 규범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도, 사회의 변혁을 기대하는 사람도 저출생과 고령화를 핵심 조건으로 고려해야 한단 의미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 특히 어쩌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으로 사는 이들의 저출생 정책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그래도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서 정부는 성·재생산권 보장을 약속한 바 있다. 여성 시민을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여기며 윽박지르거나 대상화하는 대신 재생산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는 염원이 적게나마 제도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인구는 비상이고 성평등은 삭제되는 2024년이라니.

적응·완화 외면하며 반전 가능하다 강변

저출생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반전, 완화, 적응으로 구분 가능하다. 지금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적응과 완화를 위한 고심을 외면하며 반전이 가능하다 강변하는 모양새다. 이미 태어나는 아이 중 절반 이상이 고소득층 가구에서 태어난다. 이런데 "결혼, 출산, 양육이 메리트가 되도록 하겠다"며 특정한 삶의 양식에 공적 자원을 몰아주는 일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전략으로 타당할 리 없다.

아무리 복고가 유행이라지만 국가총동원 K-인구정책은 '레트로'가 아닌 '구시대'로 회귀하는 중이다. 이 촌극이 'K-인구정책 기기괴괴'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변한 세상을 부정하며 엄중하게 전쟁을 선포하는 대신 겸허히 책임을 인정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숱한 청년들의 삶에서 혼인과 출산이 사치재가 되어버린 사회를 만들어냈음을 인정하고, 체제 전환을 위한 노력을 약속하는 다른 정치 말이다.
 

김새롬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 김새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새롬은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와 공공성, 젠더와 건강, 건강 불평등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의 공저에 참여했고, 팀 블로그 'Health Socialist Clu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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