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방송. 화면 갈무리
뉴스공장
유 작가는 기성 언론이 보수 정권에는 더 살갑게, 진보 정권에는 더 사납게 구는데 이는 기득권과 유착된 성격이 있기 때문이며, 이용자가 직접 나서는 무대가 되는 유튜브가 "혁명"을 가져왔다고 보았다. 김 기자는 정권 눈치 보지 않는 기자와 기사도 있기에 언론을 싸잡아 비판할 수 없다며 '좋은 언론'을 북돋아 줄 것을 호소했다.
이런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론상 시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공적인 일들에 대해 시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수많은 시민은 자신이 겪지도 않은 공적인 일들을 어떻게 알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예컨대 유 작가는 현 정권이 이재명 대표 죽이기를 위해 검찰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는 어떻게 얻고 어떻게 시민에게 전파할 것인가.
먼저 하나 오해를 풀어야 할 점은 유튜브가 뉴스 당사자와 이용자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마냥 자유로운 정보 시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사도 사기업이듯 유튜브도 사기업이다. 선의로 공익적인 일을 할 리 없다. 공짜로 뉴스를 이용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상품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경우 시청자의 눈알이 광고주에게 팔리는 상품이다.
그런데 이게 지금 논의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유튜브는 자신의 광고 비즈니스 모델에 충실하기 때문에 이용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 즉 광고를 더 많이 보도록 복잡한 알고리즘에 기반한 영상 추천으로 시청자 눈과 귀를 최대한 유튜브에 붙잡아두려 노력한다. 남의 편 이야기보다 우리 편 이야기가 계속 듣기 좋다. 유튜브 애용자가 특정 정파에 쏠리는 게 단지 이용자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날 방송을 보며 미국의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이 1922년 펴낸 책 <여론>이 떠올랐다. 미국의 사상가 존 듀이(John Dewey)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아픈 기소"라고 평한 이 책에서 그는 왜 민주주의와 언론이 기대대로 작동하기 어려운지 따졌다. '고정관념'(고정관념은 리프먼이 창시한 개념이다)에 기대 사물을 이해하는 대중이 어떻게 공적인 사안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지, 사기업에 불과한 신문이 왜 "사회의 지배세력을 불완전하게 기록"할 수 있을 뿐인지 등을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편으로 사실과 기록에 기반한 전문가들이 분산된 사회 시스템 곳곳에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대중이 "자신들의 안정된 빛으로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 각자가 전문가로서 책임감을 배양하고 공부를 해야(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덕을 쌓아야) 하지 언론이 답을 가져다주리라 터무니없이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의 '언론' 자리에 '유튜브'를 넣어도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