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9 10:34최종 업데이트 24.08.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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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광복회, 56개 독립유공단체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이종찬에 대한 첫 기억은 벌써 한 세대 전인 1992년에 치러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그때는 '여당 중견 정치인'이란 것만 알 수 있었지, 젊은 시절 중앙정보부에 근무한 경력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김영삼은 민정당과 3당합당을 한 후 만들어진 민자당에서 이종찬을 꺾고 대선후보가 됐다.

당시는 군부독재 잔재 청산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였으므로, 이종찬은 그저 시대를 거스르려는 신군부의 주역으로 보였다. 그랬던 그가 경선 패배 후 민자당을 탈당하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장이 됐다. 그때조차도 그저 민주세력이 구집권세력을 어느 정도는 끌어안을 현실적 필요성이 있겠거니 생각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이종찬이라는 이름은 그 뒤 오랫동안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의 고문을 오래 역임하기도 했지만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한 원로에게 굳이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제23대 광복회장이 된 이후, 이종찬은 윤석열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는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최근 독립기념관장에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이 임명되자 그는 직접 '용산'을 적시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형석은 '뉴라이트 성향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파의 원로가 '뉴라이트' 세력을 기반으로 극우의 길로 가고 있는 현 정권을 경계하고, 이 나라가 망국의 길로 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이종찬의 아들 이철우 연세대 교수는 윤석열의 유치원 시절부터 55년 지기이다. 그 때문인지 이종찬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이종찬이 김대중 정부에서 요직을 지내고 민주당에서 고문 노릇을 오래 해온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 입장에선 '전향'이나 '부역'이라고 부를만한 행보였다.

그래서인지 이종찬이 광복회 회장 취임을 즈음해 "오늘날 집단을 파괴하고 부패한 길로 들어선 자는 '신종 밀정'이다. 우리의 일치단결한 힘으로 '신종 밀정'을 추방하자"라는 발언을 했을 때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념 등으로 갈라진 광복회를 다시 하나로 모아 재건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행위에 대해 이종찬이 거세게 비판하자 그의 진정성도 재평가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용산'을 대놓고 명시하면서까지 밀정 발언을 했을까?

'신종 밀정'은 누구인가?

이종찬은 방송에서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왜 문제인지 잘 정리해 줬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방송 인터뷰 내용을 옮겨본다.

"소위 뉴라이트, 그 사람들이 주장한 첫 번째가 뭐냐하면 1948년도에 나라를 세웠고 건국을 했고 그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은 나라는 있었다. 다만 주권을 행사하려는데 일본이 강점을 했기 때문에 주권 행사를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주권을 행사를 하도록 만드는 게 독립이다, 이게 독립운동가 전체의 인식입니다. (...)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나라가 없었다. 48년도에 나라를 겨우 세웠다고 이 얘기입니다(...) (1948년에) 건국했다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을 합법화시키려는 아주 그런 사람들, 신판 친일족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이로써 이종찬은 뉴라이트가 '현대판 밀정'임을 분명히 한 것이나 다름 없다. 2023년 광복회장 취임 당시 민주당 계열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았던 밀정에 대한 언급이, 적어도 지금은 뉴라이트를 향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뉴라이트 의혹을 받는 김형석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계기로 이종찬은 용산의 밀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지나서 보니 이종찬의 광복회장 취임 당시 '신종 밀정' 언급은 그나마 개인적으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윤석열 정부가, 대놓고 뉴라이트 인사들의 독립운동 폄훼를 조장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충정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제79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대통령실로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유성호


김형석은 취임하자마자 친일인명사전 오류 재검증을 들고 나왔다. 최근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친일 인명사전이지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오류 없는 원자료를 담았다"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관련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사실관계가 틀리지 않기 때문에 소송에서 진 적이 없다고 반응했다.

지난 2월엔 독립기념관 이사로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의 박이택이 임명된 바 있다. 당연히 독립기념관 전현직 이사들은 박이택 임명 반대와 사퇴 촉구 성명을 거듭 냈다. 당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사진은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박 소장이 속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민족'을 배제하고 '한국의 장기통계' 연구를 통해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제기하는 곳이다. (박 소장도) 장기통계를 저술하고 그것을 인용해 강의와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 민족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독립기념관에 민족의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임명)는 위법하다."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단체와 함께 '역사적 진실'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의 식민지배 관련 역사적 진실을 호도해 온 대표적인 뉴라이트 조직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어떤가? 지난달 원장으로 취임한 김낙년은 <반일종족주의>의 공저자이다. <반일종족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안병직 사단의 사상적 우경화가 끝까지 가서 도달한 종착점'(전강수)으로 평가된다. 뉴라이트의 얼토당토 않은 논리를 집대성한 반민족적 폭거라고 할 만하다.

국가교육위원장 이배용,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김광동,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박지향, 제16대 국사편찬위원장 허동현... 이렇듯 한국 역사·문화에 관한 연구를 축적하고(한중연), 한국사를 수집·정리·편찬하고(국편), 역사왜곡 문제에 대응하는(동북아역사재단) 기관의 책임자로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포진됐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주요 공직 진출은 우파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섰다.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들을 '독립'기념관의 책임을 맡게 하는 반민족적 폭거까지 자행되는 시대를 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과거 식민지배를 미화하거나 독립운동을 폄훼한다. 이러한 시각이 교육과 역사 연구에서 주류로 자리 잡게 되면, 과거 역사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특정 정치 세력이 이를 이용해 국민을 분열시키거나 권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지난 우파 정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이 오염될 경우 학생들이 올바른 민주적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잘못된 역사 교육과 연구는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한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민주주의 원칙인 자유와 인권, 정의를 약화시키고, 국민적 연대와 사회적 통합까지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위협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이종찬 광복회장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시민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광복회, 56개 독립유공단체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광복회는 이종찬의 취임 이후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모든 공식 문서에 1919년을 원년으로 삼는 표기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1919년은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해다. 광복회의 방식을 따르면 이종찬이 광복회장으로 취임한 2023년의 경우 연호상 '대한민국 105년'이 된다.

이러한 연호 표기법은 과거 군주제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나 쓰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복회는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연호법을 쓰든 실질적 영향력이 없으며 그 상징성을 주목해야 한다.

이종찬 회장이 취임 이후 채택한 광복회의 연호 표기법은 1919년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이는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준으로 건국절로 삼자는 뉴라이트 세력의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다. 주요 독립운동가와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이미 공식적으로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을 천명한바 있다.

이종찬은 광복회장 당선 후 취임사를 통해 국가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 확립이 광복회의 1차적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하는 바는 헌법 전문의 내용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민주화 직후 제정된 헌법에서 당시 좌파든 우파든 대한민국의 기원을 임시정부로 본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건국절 운운은 과거 우파의 역사 인식보다 퇴행한 것이다.

임시정부 법통 관련 내용은 전국민적 민주항쟁으로 신군부 정권이 한발 물러나면서 제정된 1987년 헌법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임시정부가 '법통'이라는 점은 당시 민주당이 주장했지만, 민정당도 임시정부 정신 계승을 헌법 초안에 담고 있었다. 결국 협상 끝에 '법통'이란 구절이 포함됐다. 당시 증언을 살펴보면 민정당의 원내대표였던 이종찬이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록 신군부 인사였지만 이종찬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절차와 제도의 집합체가 아니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국가정체성은 한 사회의 가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국민들의 연대감, 소속감, 그리고 사회적 결속을 형성한다. 만약 국가정체성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면, 결국 민주주의 체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과 직결될 수 있다. '신종 밀정'들의 주요 역사, 교육, 인문학 기관 장악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는 다양한 의견과 이념을 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사회적 통합과 공통된 가치가 필요하다. 국가정체성은 이러한 통합의 기초가 되며, 이를 공격하는 행위는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방치된다면, 이는 사회의 근본적인 분열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이념이 국가정체성을 전복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 엄청난 국가적·사회적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국가정체성은 단순한 문화적 혹은 민족적 개념이 아니다. 한 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법적, 정치적 원리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헌법적 가치, 법치주의, 인간 존엄성 등이 국가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포함될 수 있다. 1987년 헌법은 여야의 합의로 제정되었다. 국민의 항쟁 앞에 물러난 신군부 지배세력과 민주화를 열망하며 온갖 피땀눈물을 흘려온 민주화세력이 함께 국가정체성의 주요 내용으로 포함한 것이 바로 4.19와 함께 임시정부 정신 계승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부정하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위협하는 것이 된다.

헌법에 임시정부 관련 내용을 명기한 것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도 빨갱이로 몰아갔다. 온갖 불법도 빨갱이 소탕이라는 명분이 붙으면 다 정당화됐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도 결국 거슬러 가면 빨갱이 타령이다. 백선엽의 친일 행적과 반공 공적은 대표적인 예다. 민주화로 인해 가까스로 반공 이외에 과연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국가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시대적 물음에 현행 헌법은 여야 합의로 임시정부와 4.19로 화답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야만의 시절을 그렇게 간신히 벗어났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반공에 더해 친일로 규정하려고 한다. 오늘날 현 정권의 도가 넘는 교육, 역사, 인문학 분야로의 신종 밀정 투입에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을 넘어, 공직 임명 금지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순간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밀정'들의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훼손에 전국민적 전민족적 대응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한양여대 ESG연구소 부소장. 북한학 박사. 전 한국NGO학회 이사, 남북학술교류위원. 좌표22 대표. 전 통일교육원 공공부문 통일교육 전문강사.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를 창립한 이후 통일교육의 버전업에 매진해왔다. '통일교육 에센스', '남도 북도 모르는 북한법 이야기', 'Life & Law', '우리가 불러온 노스코리언송즈 :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시리즈 I'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사교사인 아내와 함께 왕릉을 답사 중인데, 노스코리아 지역 왕릉 답사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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