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황의 증명 사진
김두황추모사업회 제공
성북서는 3월 7일을 기점으로 학회장 연합 모임의 핵심을 잡는 데 성공했다. 김두황·양창욱·한선모는 성북서 지하 보일러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이 중 제일 먼저 연행된 한선모가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성북서 형사 이OO는 1학기 첫 시위 날짜와 주동자를 대라며 한선모의 뺨을 수십 대나 때렸다. 급기야 코피가 터져 한선모의 온몸은 피범벅이 되었다. 양창욱도 한선모에게 건넨, '아방타방' 문건의 입수 경위와 관련 심한 추궁을 받았다. 이날 성북서가 한꺼번에 핵심 운동가를 붙잡을 수 있었던 데는 사연이 있었다.
70년대 학번이던 어떤 복학생이 학회 활동에 관심이 많아 두황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때 대화 중에 나온 사람을 별명으로 메모했다. 한편 그 복학생은 자기 과의 후배 세미나를 지도했는데 '쿠바혁명사'를 교재로 택해 후배들에게 복사를 맡겼다. 그런데 복사집 주인이 성북서에 신고해 복학생이 연행되고 말았다.
이때 김두황과 대화하며 작성한 메모까지 압수되어 성북서 형사들은 별칭으로 적은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라고 그에게 물고문까지 자행했다. 당시 경찰이 학생 운동가를 폭행하는 건 흔한 일이었으나 대공분실이 아닌 일선 경찰서에서 물고문까지 서슴없이 벌인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혹독하게 당해 결국 그 복학생의 입에서 80학번 핵심의 이름이 나오고 말았다. 성북서는 과녁을 좁힐 수 있었고 이날 기습 작전을 펼친 것이다(2002년 의문사위에 출석한 복학생은 통곡을 하며 '김두황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그날의 가슴 아픈 사연을 증언했다).
우리는 3월 7일부터 3월 18일까지 성북서 옆에 있던 미시간호텔에 갇혀 심문을 받았죠. 고대 학생 운동의 조직 상황 그리고 1학기 시위 계획에 대한 조사를 받았어요. 성북서는 이 사건(?)을 '고대 단대 간 학회 연합체 및 지하조직 81통일체 연계 1983년 1학기 시위 모의 사건'(일명 3·7사건)으로 규정했어요. 길고 거창한 이름이죠. 우리 셋에 대해선 지도 휴학 처리 후 입대라는 의견을 고려대에 보냈고 학교는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어요. 그날이 3월 16일이었는데 다음날인 3월 17일 병무청은 재빨리 현역 입영 명령서를 발부했죠.
양창욱·김두황·한선모가 체포 영장도 없이 연행되었을 때 특이한 점은 성북서 근처 미시간호텔에서 조사받은 사실이다. 국가 기관이 사설 감옥을 운용한 셈인데 '학회장단 모임' 결성만으로는 아무래도 구속 영장을 받기 어려우니 이런 편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탈법·불법 조사가 진행되면서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열흘 가까운 심문과 고문으로 세 사람이 피폐해지고 특히 한선모가 정신분열 초기 증세까지 보일 때였다. 담당 형사 곽00이 느닷없이 술을 산다고 세 사람을 보문시장 근처에 있는 찻집 '영'으로 데려갔다. 말이 찻집이지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이었다. 그는 술이 거나해지자 옆 좌석에 있던 여자를 구석 방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왔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미시간으로 돌아올 때 곽00은 김두황과 양창욱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가요 '흔들리지 않게'를 선창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순간이었다. 김두황이 군대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에 "한두 시간이 있었다. 입영 전야에 말이다. 혼란에 봉착했었다"라고 쓰인 구절이 있다. 아마도 이때를 두고 한 말로 여겨진다. 담당 형사가 술에 취했을 때 도망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감정이 배어있다. 김두황과 양창욱, 한선모는 불시에 체포되어 열흘 가까이 폭력을 당한지라 '결단'을 내릴 여력이 없었다. 도망을 친다 해도 호주머니에 백 원짜리 하나 없고 당장 그날 밤 몸을 숨길 곳도 없었으니 말이다.
덧붙이자면 여기서 나오는 성북서 형사 김OO, 이OO, 곽OO의 행태는 고려대학교 재료공학과 80학번 홍기원이 쓴 <김두황 평전>(어나더북스, 2023)에서 더 많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성북서 형사들은 2002년 의문사위에 출석해 경찰관 재직 시 학생운동가를 폭행한 적이 없다며 고려대 출신 증언자들의 진술을 부인했다.
- ②편 <
덤으로 얻은 삶, 내 친구 죽은 이유 밝힐 겁니다>(https://omn.kr/2a6dq)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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