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개막식 모니터에 '프로젝트 2025 중단'이라고 쓰여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이중 취약성과 전략적 위기
트럼프가 줄곧 활용해 온 협상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과 '최대 압박'의 결합이다. 기존 질서를 따르지 않고 판을 흔들어 상대의 취약점을 극대화한 뒤, 이를 지렛대로 포괄적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트럼프 2기의 동북아 전략은 이 협상술을 바탕으로 대중 견제와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다.
한국이 첫 압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중 취약성' 때문이다. 북핵 위협 아래 미국의 안보 공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안보적 취약성과 높은 대중 교역 의존도라는 경제적 취약성이 그것이다. 프로젝트 2025는 이미 "대중 경제의존도 축소"를 안보협력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했다. "비용 효율성" 재검토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재배치와 확장억제 공약의 조건부화까지 시사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재래식 군사 방어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미일 관계도 근본적 변화가 예상된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며 우리와의 '전략적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 온 '수평적 삼각협력'이 미일동맹 중심의 위계적 구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동맹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은 약화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북핵 문제도 극적 변화가 예상된다. 프로젝트 2025는 군사적 억지와 제재를 강조하지만,
공화당 신강령이 북핵 문제를 트럼프에게 일임한 상황에서 '역사적 외교 성과'를 노리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76%가 핵개발 중단을 조건으로 한 평화협정을 지지하고, 제한적 핵보유 용인에 반대하는 비율은 24%에 그쳤다. 이는 북한의 현 핵능력을 고려할 때 완전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트럼프는 한일의 반발과 미 국내 우려를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질서의 판을 흔드는 톱다운식 파격 행보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이 과정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배제한 채 북미 직거래로 북핵 협상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면서 전략적 취약성이 심화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개별적이 아니라 연쇄적,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대중 경제관계 축소 압박, 동맹 비용 증가, 북핵 협상 배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우리의 전략적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
국회와 시민사회의 유기적 협력 긴요
트럼프 2기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려면 국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가 다수 국민들에 의해 사실상 심리적으로 탄핵된 상태라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예산권과 인준권, 감독권을 통해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효과적으로 견제한다. 이는 단순한 견제를 넘어 협상력 강화로 이어진다.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무리한 요구를 제어하고, 국익에 부합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 국회도 이러한 견제 장치를 즉각 제도화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상한선' 법제화, 동맹 현안 상설 특별위원회 설치, 주요 안보 결정의 사전 동의 절차 의무화가 핵심이다. 한미일 군사협력 각서를 교환하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트럼프의 극단적 요구에 대한 제도적 방어막이 될 것이다.
나아가 국회는 시민사회와 함께 포괄적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안보-경제 연계 압박에 대비한 산업별 리스크 분석, 대중 의존도의 단계적 조정 방안, 북핵 문제에 대한 독자적 해법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 없이는 트럼프의 '최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지금은 '기다리다 대응하는' 소극적 자세로는 안 된다. 국회와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구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면, 오히려 우리의 전략적 역량과 국익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변화의 파고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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