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언덕에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강유원 잡문집)>가 나왔다.
나는 씨네21에 연재되던 칼럼 이창을 통해 강유원을 알게 되었다. 씨네21을 사서 보는 독자는 아니었던 내게 강유원은 그저 '회사원철학박사'라는 직함과 씨네21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질적인 문체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상에서 몇몇 익명의 지식인 그룹들의 불만 섞인 항변을 통해 언뜻 강유원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나는 지식인의 스캔들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글들은 지나쳐버렸다.
강유원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대개의 사람들도 아마 이와 비슷한 정도의 경험을 했으리라. 내게 강유원은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다(나중에 생각해보니 <보수주의자들>(삼인)이라는 책에서 복거일을 비판하는 글을 쓴 사람이 강유원이었다).
그런 와중에 친한 후배에게서 강유원의 <책과 세계>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이 올봄의 일이다. 그 책에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는 식의 매혹적인 문장들이 즐비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강유원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야 했다. <서양근대문명의 기반>(미토)을 읽고, <책>(야간비행)을 읽었다.
나는 강유원의 책을 읽는 '회사원독자'로서는 행복했지만, 편집자로서는 불행하다고 느꼈다. 좋은 필자를 만난 편집자는 그에게서 좋은 원고를 뽑아낼 때까지는 행복할 수가 없는 법이다. 강유원의 책을 내보고 싶었다. 나는 손쉬운 대로 씨네21에 연재한 글을 모아 두어 차례 통독을 하고 나서 강유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강유원은 그 글을 출간하고 싶다는 내 제의를 간단히 거절했다.
"그건 이미 잡지를 통해서 다 발표했던 글입니다. 같은 글을 두 차례나 발표하고 두 군데서 원고료를 받는 건 온당하지 않아요."
나로서는 강유원의 그런 결벽증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충분히 존중해 줄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돌아서게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강유원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 글을 한번씩 보았을 거야. 아직도 자기 진면목을 다 드러내지 못한 필자에게서 좀 더 신선한 것들을 뽑아내지는 못할망정 재탕이나 요구한 것은 잘못이야.'
나는 석 달 동안 강유원의 야간 강좌를 찾아가서 청강을 하고, 틈날 때마다 강유원 사이트(http://armarius.net)의 글들을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강유원이 논문을 쓰는 과정들도 들어 있고 서평들도 있었다. 녹록치 않은 사이트인지라 공부가 부족한 나 같은 '회사원독자'가 충분히 소화할 수 없는 글이나 번역물들도 있었다. 이런 저런 글들을 챙겨 읽으며 나는 점점 고무되었다. 문득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노자가 망명길에 도덕경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한 성담(Legende von der Entstehung des Buches Taoteking auf dem Weg des Laotse in die Emigration)"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 이름이 책 위에 장식된
현인만을 칭송하지 않는다.
현인에게서 지혜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리에게도 감사를 바친다.
그가 그에게서 지혜를 간청했던 것이다.
어느새 노자에게서 도덕경을 받아낸 세리의 심정이 된 나는 '그야말로 강유원의 글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멍석을 깔고 있는 내 노력을 찬양하는 시구가 아니겠는가'하고 들떴다.
내가 내고 싶은 것은 논문이나 논문 쓰는 법에 관한 글은 아니었다. 아니…. 어쨌든, 지금은 아니었다. 서평들도 매력적이지만 당장은 미루고 싶었다. 강유원이 서평가일 뿐이겠는가. 강유원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면을 가장 의미심장하게 표현할 수 있는 원고가 무얼지 선뜻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강유원의 잡문이었다. 강유원이 잡문이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글을 묶어서 나온 것이 <몸으로 하는 공부>이다. 이 책에는 강유원이 좋아한다는 "잡문의 시기에는 천재성과 범죄성 사이에 불가피한 친화력이 있다"는 미셸 투르니에의 말마따나 "그 사회와의 대립 속에서만 가능"한 번뜩임이 있었다.
강유원의 텍스트는 거리낌이 없으며 정연하다. 강유원의 추호도 거리낌 없는 글들이 어떻게 해서 나올 수 있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잡문06 지식인은 어떻게 먹고 사는가>, <잡문 07 지식인과 매스미디어>를 보시라(한편 강유원의 정연한 글들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내가 공부하는 방법>도 함께 실었다).
강유원은 한국에서 "교수가 될 사람은 논문주제를… 학계의 동향, 여러 가지 역학 관계, 취직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 정한다고 일갈한다. "지도교수와 관련된 중요한 행사가 겹치면… 학생을 위하여 강의를 하러 갈 수 있을지 의문인 대학의 지식인들이 별 볼일 없는 이유는… 그들을 먹여 살려주는 이들을 위해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강유원은 일본만화 <시마과장>에 나온 술집 마담의 뒤를 봐 주는 배나온 아저씨들을 패트론에 빗대며, 지식인이 현대의 패트론들과 흘FP붙는 것을 비판한다. 국가나 재벌을 패트론으로 삼는 대학을 비판하지 못하는 자들과 미디어의 검열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들, 여기에 더해 미디어에서 직접 돈을 받는 자들에 대해 강유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월급 주는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 그들의 일은 이미 미디어에 길들어진 학자들을 관리하고, 그럴 재질이 있어 뵈는 똘마니들을 발굴해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다. 자신이 학위를 딴 학문 분야의 학회에 참석해서 학자인 척하며, 거기에 참석한 다른 학자들은 기자를 가까이 하고자 할근거린다. 어차피 미디어를 핥아먹고 살기는 매일반이지만, 미디어에서 직접 돈을 받는 이들이 더 저질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강유원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 않다. 둘뿐이다. 체제 안으로 흡수-고용co-opt되어 살아가거나, 아니면 꿋꿋이 살아가거나 뿐이다."
나는 강유원 텍스트의 근원을 여기서 발견했다. 체제 밖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학인(學人)의 자세에서. 강유원의 텍스트를 읽고 있고, 또 읽고자 하는 사람은 강유원의 컨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 오늘의 강유원을 만들어낸 '몸으로 해온 공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한 달 전 잡문 원고를 찾아들고 나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강유원씨를 만났다. 강유원씨는 흡족하게 웃으며 내게 점심을 사줬다. 두 시간 동안 강유원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을 보니 공부가 하고 싶어지잖아요."
"마땅히 그래야죠~"
이렇게 해서 <몸으로 하는 공부>가 나왔다. 나는 행복한 독자이고 행복한 편집자다.
덧붙이는 글 | 김익균은 여름언덕 출판사의 <몸으로 하는 공부> 담당 편집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