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분 옆집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특별하지 않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그런데!'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사실 우리의 실제 생활 이야기는 미디어에 나오지 않으니까."(80쪽)나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른 살 미혼 여성이다. 지방 출신이라 주변에 1인가구 친구들이 많다. 만나면 결혼, 회사, 부모님 건강, 내 건강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외동인데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친구는 특히 걱정이 많다. 부모님이 아프면 어떻게 하지. 나중에 내가 아플 때는 어떻게 하지.
우리 삶의 모습은 빠르게 변하지만, 느리게 바뀌는 것들이 있다. 결혼식, 장례 문화를 비롯해 가족을 이뤄야 한다는 것,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일 모두 기존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에서 가능했던 삶의 방식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여기에 맞추려 애쓴다. 고달프고, 외롭고,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주류 미디어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주류 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1인가구들
주류 미디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선택지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는 혼자 살되 고립되지 않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1인가구 생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제는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다.
이 책은 도시 속 마을공동체를 심층 취재한 <마을의 귀환>의 후속 기획으로 출발했다. <마을의 귀환> 출간 후 열린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한 독자가 "1인가구를 위한 마을은 없나요?" 하고 물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성미산마을, 성대골마을 등 대부분의 규모 있는 마을공동체들은 공동육아를 바탕에 둔 '정상 가족' 중심의 마을이다. 취재팀은 1인가구들의 마을공동체를 취재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5월까지 '1인가구, 마을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이 책은 그 연재를 뼈대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은 먼저 1인가구 하면 자동적으로 '미혼의 젊은 싱글'을 떠올리는 연상 작용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2015년 기준 네 명 중 한 명이 1인가구인데도 이를 "결혼 전 잠시 거쳐가는 일시적인 상태로 생각"하게 된다.
결혼했다가 혼자 된 이, 비혼을 선택한 이, 독거노인, 혼자 살거나 쉐어하우스에서 모여 사는 청년 모두 1인가구이다. 이 책에는 이처럼 다양한 1인가구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동네 문화예술공간 '아현동 쓰리룸'은 밥과 음악을 매개로 만난 '청춘들의 공동체'다. 대전 출신인 휘재는 취업을 하려고 서울로 왔다. 4년간 이직만 6번. 이사도 참 많이 다닌 끝에, 2013년 아현동에 방 세칸짜리 집을 구해 친구 두 명과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셋이서 밴드를 결성하고, 소셜다이닝 모임 '목요일엔 식당'을 시작했다. 인디 뮤지션들을 초청해 집밥 모임과 함께 하는 공연을 기획했고, 동네 거실 '언뜻가게'를 열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인문학, 철학 등을 공부하는 문화예술학교를 열 예정이다.
글과 사진, 영상과 그림 등을 창작하는 20, 30대 청년들이 모인 '명랑마주꾼'은 2012년 서울 마포구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100일 사이에 주민 여섯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계기로 모이게 됐다.
이들은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다니고, 고립사한 이들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 배고픈 청년인 자신들과 고립된 노인들의 저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고, "가족에게 절대적으로 부양 의무를 지우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 묻는다.
'지역 공동체'를 넘어, '정서의 공동체'로책을 읽다보면 마을공동체가 더 이상 지역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15년 2월 서울연구원이 펴낸 정책연구 결과 "서울시 1인가구의 거주 기간은 1년 이내의 단기 거주가 32.2퍼센트로 가장 높다". 게다가 요즘 옆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깝게 지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존 '마을공동체'도 오늘날 1인가구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 됐다. 이들의 관계는 '정서의 공동체' '가치의 공동체'에 더 가까워 보인다.
'우리동네사람들'은 빌라 세 가구를 빌려 생활을 함께 하는 비교적 강한 수준의 공동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30대 초중반 1인가구와 기혼가구가 함께 생활하면서 근처 논에서 농사를 짓고, '커뮤니티 펍'과 게스트하우스를 여는 등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귀촌을 준비하는 모임이었지만, 알아갈수록 귀촌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서 인천에 생활터전을 두고 자급자족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성북동 마을 공동체의 주축인 기민은 한때 직업 군인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고정 수입을 포기했다. 성북동에 여행카페 '티티카카'를 열고 마을 활동에 참여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저소비 생활자 모임'과 '비혼 모임'을 열고, 신용이 아닌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 금융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금융 협동조합 '공동체은행 빈고'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방 세 개짜리 집을 구해 비혼 남성들과 좌충우돌 공유 생활을 실험하고 있다. 기민은 말한다.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부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갖는 안정성이 있잖아요. 정서적인 부분이든 경제적인 부분이든,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의지하고 함께 살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하지만 결혼하고 싶거나 혈연가족에게 의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공동체를 고민했죠."(109~111쪽)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마구마구 불온해지자! "인생에서 뭔가를 선택할 때, 다른 삶의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알지 못하면 '나도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나? 그 길밖에 없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를 유해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혼자 사는 법을 알려주다니, 불온하다!' 이러면 어쩌냐고. 하하."(79쪽) 여성 1인가구들의 조합인 '그리다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언니들의 말이다. 또한 완주군 삼례읍 씨앗 조합원인 다솜은 "쓸모 있는 실험을 통해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1인가구들의 공동체는 정말 다양하다. 관계의 형태도 다르고, 지향하는 곳도 다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방치하지 않으며, 원하는 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런 점에서 그들은 아주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전혀 미화하지 않는다. 어려움과 시행착오들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주류 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그들의 실제 생활은 무척 흥미로웠고,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전염되어서, 나 역시 스스로 더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불온해지는 거라면, 더 마구 마구 불온해지고 싶어졌다.
덧붙이는 글 |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글 홍현진·강민수 사진 유성호) / 2016년 3월/ 오마이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