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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역사저널 그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역사저널 그날>은 재정비를 위해 종영했고 5월에 재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과 상의 없이 MC가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제작진이 이에 항의하자 KBS 경영진은 제작진 해체를 지시했다. 어떻게 된 상황일까?

<역사저널 그날> 논란 등 현재 KBS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자 시사교양PD 출신인 조애진 언론노조 KBS 부본부장을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의 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조 부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

"<역사저널 그날> MC, 왜 섭외됐던 배우는 안 되고 조수빈?"
 
조애진 언론노조 KBS 부본부장
 조애진 언론노조 KBS 부본부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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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애진 부본부장은 2015년에 KBS에 입사했잖아요. 그때는 박근혜 정부 중반이었고, 방송 탄압이 심할 때죠. 그리고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2015년쯤은 입사 초기였고, 지금은 노조 수석 본부장이라서 관점이 다를 것 같은데.

"상황은 지금이 역대 최악인 것 같고요. 제가 입사했을 때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였어요. 그때는 방송 내용이나 출연자 같은 분야들을 보수 정권이나 경영진이 원하는 사람으로 앉히려는 식의 방송 장악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의 재원을 건드려서 공영방송 시스템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혐오감을 전국민적으로 조장하고 있어요. 한국사회에 만연한 극단적 혐오 조장 방식이 공영방송 장악의 방식에도 투영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현재 KBS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는 <역사저널 그날> 논란인 것 같아요. 2월 갑작스럽게 종영했고, 3개월 만에 재개하려고 했는데 '낙하산 MC' 논란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죠?

"<역사저널 그날>은 2월부터 프로그램 재정비 중이었고요. 첫 녹화 닷새 전에 제작진이 간부로부터 '조수빈씨를 앉히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은 왜 기존 섭외했던 유명 배우를 쓰면 안 되고, 조수빈씨를 써야 하느냐는 것이죠. 사측은 여기에는 답하지 않고 제작진 해체까지 지시한 상황입니다."

- 2월에 끝날 때는 문제가 없었나요?

"그때도 문제가 있었어요. 그때 프로그램 개편하자는 얘기가 국 차원에서 나와서 개편을 준비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개편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간부와 평PD들 회의 자리에서 서로 의견이 불일치했던 일을 갖고 한 사내 구성원이 내부게시판에 '<역사저널 그날>의 평PD들이 프로그램을 사유화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올렸어요. 작성자를 보수언론단체인 언론인총연합회 소속으로 표시해서요. 그리고 그다음날 기존 제작본부장이 잘리고 이제원 본부장이 왔습니다."

"권력자 오더로 벌어진 사건 아니라면 뭣하러 제작진 해체까지?"
 
김은곤 KBS 피디협회 부회장, 김세원 KBS 피디협회 회장, 조애진 언론노조 KBS본부 수석부위원장, 기훈석 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이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개편 관련 KBS PD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조수빈씨 측이 불참 의사를 전했다는 '역사저널 그날' 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새 MC 섭외 확정된 날의 사진들을 공개하며 "낙하산 MC를 제작진이 거부하자 프로그램이 사실상 폐지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며 "아직도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한 마음만이 간절하며, 책임질 자는 책임지고 프로그램은 살려내라"고 호소했다.
▲ "역사저널 그날" 살려내라 김은곤 KBS 피디협회 부회장, 김세원 KBS 피디협회 회장, 조애진 언론노조 KBS본부 수석부위원장, 기훈석 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이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개편 관련 KBS PD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조수빈씨 측이 불참 의사를 전했다는 '역사저널 그날' 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새 MC 섭외 확정된 날의 사진들을 공개하며 "낙하산 MC를 제작진이 거부하자 프로그램이 사실상 폐지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며 "아직도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한 마음만이 간절하며, 책임질 자는 책임지고 프로그램은 살려내라"고 호소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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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벌어지는 논란은 MC를 일방적으로 바꾼 데서 시작하는 건가요?

"첫 녹화 닷새 전에 갑자기 유명 배우로 정해져 있었던 MC가 아니라 조수빈이라는, 거의 정당인이나 다름 없는 분으로 앉히라는 이야기를 제작진이 국장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 바꾼 이유는?

"제작본부장은 '조수빈씨가 지적이고 단아한 이미지고 아나운서 출신이니까 진행을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런 문제는) 제작진과 상의해서 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방송법도 방송 편성 책임자와 사장을 명확하게 구별해서 방송 편성 책임자가 자율권 갖고 편성하도록 돼 있어요. 일반적으로 KBS 편성 규약에서도 방송 제작자들이 자율성 갖고 프로그램 만들고 사측이 여러 결정을 할 때 제작진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그게 법이고 상식이고 관례입니다.

민주적 제작 방식을 보장하지 않으면, 힘 있는 사람 뜻대로 방송을 좌우하는 것이 너무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본인이 최종 결재권자이니까 본인 마음대로 하는 게 다 합리화된다고 보고 있어요."

- 어떤 의도가 담겼다고 보세요?

"얼마 전 PD협회 간부들이 제작본부장과 면담을 했었어요. 그 자리에서 '누가 처음 조수빈씨를 제안했냐'고 질문하니까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임원들끼리 하는 차담회, 즉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처음 나왔다'고 해요. 즉 다른 임원이 처음 얘기했다고 말했어요.

저희는 그 임원이 '밖에서 받아온 오더'라고 생각합니다. 유력한 권력자의 오더로 인해 벌어진 MC 사건이 아니라면 뭣하러 제작진 해체까지 지시합니까? 조수빈씨가 (MC를) 안 한다고 했거든요. 만약에 단아한 아나운서를 앉히고 싶은 거였다면 다른 아나운서를 앉히려고 그다음 수순을 밟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근데 그게 아니라 제작진 해체를 지시했어요. 이건 의도가 있었던 거죠."

- 지금 상태에서 프로그램은 폐지된 건가요?

"(경영진은) 계속 만든다고는 말합니다. 어쨌든 사측이 기약 없는 무기한 방송 중단 결정을 내렸으니, 사실상 폐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KBS 장악 대외비 문건', 실체 분명해... 문건 책임자 밝혀내야"
 
3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독재화하는 한국 - 공영방송과 신보도지침' 중.
 3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독재화하는 한국 - 공영방송과 신보도지침' 중.
ⓒ MBC 스트레이트 유뷰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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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시사방송인 <전격시사> MC로 시사평론가인 고성국씨가 발탁돼 논란이 있죠. 이건 어떻게 보세요?

"고성국씨는 공영방송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에요. 자기 (유튜브) 채널에 그 사람이 올린 제목 영상을 보면 '수신료 분리 징수, 국민 96%가 찬성한다'고 거짓 선동을 해온 사람이에요. 국민제안 홈페이지 안에 있는 국민 참여 토론 게시판에는 다 중복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요. 이건 그곳 관계자들도 여러 번 인정한 일입니다.

이것을 마치 여런조사기관에서 하는 공식 설문조사 결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명백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사를 공영방송 채널에 MC로 앉히는 것 자체가 제일 큰 문제죠."

- 의도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겠죠. 'KBS 장악 대외비 문건'이 공개됐었잖아요(3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보도). 그 문건을 보면 '우파 중심으로 조직을 장악한다'고 나와요, 저는 이 문구를 착실히 시행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부들을 우파로 앉힌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렸던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를 하던 조수빈씨를 역사 프로그램 MC로 앉히려고 하고, 총선 때 국민의힘 후보들 찾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유튜브를 찍은 고성국씨 같은 사람을 진행자로 기용했습니다."

- 결국 KBS는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을 상대로 지난 17일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그 문건을 보면 'KBS를 공중 분해시킨다'는 표현이 있어요. 그리고 공영방송을 우파 중심으로 기용하고 장악한다고요. 이 건은 문건을 작성한 사람을 찾아서 징계해야 하는 사안이에요. 공사의 명예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문건이잖아요.

근데 이걸 공적 목적으로 보도한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건다? 내부에서 주도해서 문건을 만들었든, 외부에서 만들었든 간에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면 이것은 내부에서 도와주지 않고서는 이렇게 쓸 수가 없는 성격의 문건입니다."

- 경영진은 실체가 불분명한 '괴문서'라는 입장이잖아요.

"절대 실체가 불분명하지 않고요. 저희는 간부들 사이에 (문건이) 유통됐다는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이거는 내부에서 분명하게 돌아다닌 문건이고 실체가 있는 문건입니다."

- 어디에서 온 걸까요?

"그걸 밝혀내야죠. 이걸 주도해서 쓴 사람이 누구고 이 문건의 총책임자가 누군지 저희가 끝까지 밝혀낼 겁니다. 언론 장악 국정조사 같은 것들이 앞으로 있을 예정인데 그때도 반드시 대외비 문건 진상 파악도 포함해서 진행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 KBS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죠. 이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수신료 분리 징수는 분명히 초법적인 행위를 한 것입니다. 방송법을 개정하고 국민 총의를 모아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서 수신료 재원 구조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바꿔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단순하게 시행령 하나만 뜯어고쳐서 한전이 함께 징수할 수 없도록 하는 꼼수를 써서 KBS가 수신료를 걷지 못하도록 하는 식의 방송 장악은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일 같습니다. 총력 대응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조애진, #KBS, #역사저널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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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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