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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증산면은 김천에서도 두메산골이다. 그런데 두메산골인 이곳에서 '내 고장 문화유산 알리미 양성 과정'이 5월 1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2시간씩 8회 개최되었다. 마지막 26일은 현장학습을 한다.

마을을 순시하던 중 마주친 치안센터 소장님이 이 연수 과정을 안내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공식 기관으로서 가장 작은 기관인 그것도 오지에 있는 면에서 주최하는 것이라 강좌에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거절하기 힘들어 참석하였다.

기대 없이 들었는데 놀란 세 가지
  
내 고장 문화유산 알리미 양성 과정 현수막
▲ 내 고장 문화유산 알리미 양성 과정 현수막 내 고장 문화유산 알리미 양성 과정 현수막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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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면서 놀란 점이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이 과정을 담당하고 운영하는 분의 문화에 대한 지식과 태도이다. 둘째는 참석자의 인원과 진지함이다. 셋째는 강사의 열정이다.

먼저 이 과정을 운영하는 이영구(증산면 행정복지센터 총무팀장)님의 문화에 대한 지식과 태도이다. 참석자들에게 매주 강좌 안내와 강좌 준비를 위해 강사 섭외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강사와 사전 연락하여 강의 내용과 수준에 대해 안내한다는 것이다. 강사가 이에 대해 놀라 강의에 앞서 이를 언급한 바도 있다.

강의 내용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면서 그 수준에 놀라 처음에는 문화 분야 전문가로 인지했는데 공무원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혹시나 시청에서 문화 분야 담당이냐고 물었는데 면의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고 있다는 말에 담당 공무원의 문화 수준에 놀랐다고 한다.

또 다른 강사님은 서울에서 내려오는데 KTX 역까지 마중 나와, 1시간 동안 함께 오면서 이곳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깊이와 자부심이 그대로 와닿아 속으로 감탄하였다는 말씀도 하신다. 이영구님의 이러한 모습으로 자연스레 강의 내용과 수준이 함께 올라간다.

참석자들에게 안내하는 사항은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말씀하신다. 강의 내용에 대해 조금 논란이 되거나 부족한 부분은 공부하고 확인하여 다음 시간에 설명하기도 하고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에 나 또한 감동하여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이런 강좌 열게 된 동기는?

"산간오지로만 여겼던 이곳에 근무해 보니, 신라 천 년의 역사와 문화 향기가 서려 있는 청암사와 수도암 그리고 한강 정구의 얼이 서린 무흘구곡, 150년 역사의 김천지역 천주교 발상지인 신앙선교유적지 등 문화유산이 골골이 산재,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곳이 역사와 문화의 보고임을 알게 되었다.

2023년 증산면 주민자치위원회에 당해 사업으로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일환으로 잊혀가는 지역의 숨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찾아내어 책자로 발간, 보급을 건의하여 <역사와 문화 스토리의 보고(寶庫), 증산>이라는 자료집을 주민들에게 배부하게 되었다.

아울러, 올해에는 지역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이곳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해 발간한 자료집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여 문화유산 알리미 양성 과정을 기획하게 되었다."
 

- 강사 섭외와 강좌 내용 조정은 어떻게?

"강사 섭외 및 강좌 내용 중 문화유산 해설 부분은 한국관광공사 관광e배움터를 참고하였으며, 인문학 강좌 분야는 학계에 지역의 문화유산관련 연구교수를 직접 섭외 하였다."
 

- 이 연수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초빙 강사와 수강생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고민한 점, 이곳의 지리·환경, 수강생의 인문학에 대한 욕구 대비 강의 출석률에 대해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나 매회 80% 정도의 수강생이 빠짐없이 꾸준히 참여함으로써 본 강좌를 원활하게 수행하게 되었다."
 

- 이 연수를 진행하면서 아쉬웠거나 바라는 점은?

"제한된 보조사업비의 용도로 본 강좌 과정 마무리에 다른 지역 문화유산 답사를 계획하지 못하였고, 강좌 운영 과정 중 수강생들에게 편의성 제공에 다소 소홀한 점이 있었다."
 

- 내년에도 이 연수를 지속하실 생각인지?

"수강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았을 때 본 강좌 개설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예산이 수반될지 미지수라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
 

- 하고 싶은 말은?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역민이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한다. 잘 가꾼다는 의미에는 물리적인 것 이외에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고 잘 알아야 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함축적인 글로 조선 후기 유한준이 김광국의 석농화원 발문에 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글로 대신한다."

다음으로, 참석자들은 대부분 60세를 넘겼다. 이 강좌는 40명으로 시작하였는데 30명 이상이 참석한다. 강의 도중 조는 사람도 거의 없다. 태도도 진지하고 강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거나 의문이 생기면 질문도 한다. 여태껏 많은 연수를 받고 강의에 참석하였지만, 이러한 강의 경청 태도는 최상이었다.

질문 내용을 보면서 재야에 고수가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궁금한 것은 물론이고, 말하고 있는 근거에 대해 질문하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확인한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질문이 강의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면 또 다른 참석자가 이를 중재하고 강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앎에 대한 열정 그리고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은 나이를 넘어선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내 것 없는 세계화는 식민지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기를 알고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내 멋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눅이 든다.

마지막으로 강사들의 열정이다. 강의 내용과 수준을 조절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참석자들 나이가 대부분 60세 이상이고,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다. 2시간 동안 강의해야 한다. 참석자들에게 전문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도 강사들은 시간을 초과하여 강의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쉽고 지루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였다. 강의 내용 가운데 바로 와닿았거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시루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 증산면(甑山面)이라 불렀다고 한다. 증(甑)은 '시루'이므로 여기에 맞는 '시루 증(甑)'을 가져왔다고 한다. 시루는 가운데가 옴폭 파였다. 이 마을 봉우리는 시루를 그대로 닮았다.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니 바로 와닿았다. 우리나라에 시루봉은 많지만 이렇게 명쾌한 설명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란다면
  
시루봉 아래 형성된 마을
▲ 증산면 시루봉 시루봉 아래 형성된 마을
ⓒ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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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에 가보면 다른 절집에서 볼 수 없는 건물 모습이 있다고 한다. 극락전이다. 지금까지는 대웅전과 조금 떨어져 있는 별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단지 인현왕후가 폐비 된 후 이 절집에 머물렀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절집에서 볼 수 없는 건물 모습이다. 궁궐의 누대와 난간 형식을 도입하여 지었다. 이는 폐비 된 인현왕후가 이곳에 머물면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 한다.
  
인현왕후가 머물렀던 곳이기에 이를 배려하여 궁궐 형태인 누대와 난간을 갖춘 모습을 하고 있다.
▲ 청암사 극락전 인현왕후가 머물렀던 곳이기에 이를 배려하여 궁궐 형태인 누대와 난간을 갖춘 모습을 하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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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에 가보면 암자라는 말이 무색하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이곳에는 보물이 3점이나 있다. 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대적광전 앞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 약광전의 '석조보살좌상'이다. 석불의 손 모양이 상징하는 바를 진리와 중생들의 병과 연계하여 쉽게 설명하여 주었다.

불교에 대해 문외한이라 지금까지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에는 절집에 가면 관심을 가지고 부처의 수인(手印 : 불상의 손 모양)을 살펴보아야지 하는 마음도 생긴다. 대적광전에 바라보는 가야산의 풍광이 정말 멋진데 여기에서 일출 풍광이 멋있게 나온다며 덧붙여 설명한다.

     
수도암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가야산
▲ 수도암 수도암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가야산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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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과 성주의 자랑인 무흘구곡 계곡이 우리 마을을 지나 흘러간다. 무흘구곡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서 구곡의 순서가 역으로 이루어진 이유를 알았다. 1곡은 상류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류에서 시작한다. 이는 학문의 어려움을 빗대는 것이라 한다.

처음은 쉽게 누구나 다가설 수 있지만 갈수록 어려지는 것이 학문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흘(武屹)은 주자의 무이(武夷)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한강이 주자를 따랐기에 무이의 '무'를 따왔고, '이'와 중국 발음이 같은 '흘'을 가져왔다고 한다. 무이의 중국 발음은 [wuyi]이고, 무흘의 중국 발음도 [wuyi]이다.

     
무흘구곡 8곡인 와룡암
▲ 무흘구곡 와룡암 무흘구곡 8곡인 와룡암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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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으로 초등학교 교육은 내 마을에 대한 교육에서 시작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내 마을의 자랑거리 - 인물, 자연, 역사, 지리, 문화, 관광 등을 초등학교에서 알뜰히 가르치면 좋겠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내 마을의 자랑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언급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은 나에 대한 자긍심으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태그:#시골살이, #증산면, #문화유산,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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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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