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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을 때는 요일에 민감하였다. 가끔 날짜는 몰라도 요일에 대한 감각은 확실하였다. 수업이 적은 날은 마음이 편안하였고, 수업이 많은 날에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중간중간에 있는 공휴일과 개교기념일은 삶의 활력소였다.

퇴임하고 시골살이하니 요일에 대한 감각은 물론이고 주말과 공휴일에 대한 감각도 아예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일기를 짧게나마 쓰기 시작했다.

내 시골살이의 주된 일과는 정원이다. 요일은 이제 의미가 없다. 계절에 따라 생활 방식이 변하고 있다. 겨울에는 몸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눈 치우는 일이 전부이다. 지난해 이곳에는 눈이 많이 왔다. 이틀이 멀다고 눈을 치웠다.

눈 치우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부산 촌놈이 함박눈 내리는 모습에 감탄했고, 눈 쌓인 이곳저곳을 온종일 바라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도로에 눈이 살짝 녹으면 무흘구곡을 따라가면서 그야말로 선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머지 시간은 시골살이의 여유를 한껏 누렸다.
   
시골살이 겨울은 설국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미처 보지 못하였던 영화를 보고, 미지의 세계였던 클래식을 공부하는 흔히 말하는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계절이다. 그야말로 천국의 시간이다. 봄이 오면 집 둘레와 정원을 정리하고, 가꿀 꽃과 나무에 대해 생각하면서 봄을 기다렸다.

봄이 왔다. 겨울의 여유는 사라지고 몸이 엄청 힘들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루에 몸을 쓰는 시간은 최대한 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자고 아내와 약속하였다. 이른 봄의 오전은 아직 추웠다. 몸을 쓰는 시간은 점심 먹고 난 뒤로 하였다.

꽃과 나무를 새로 심거나, 옮기기 위해 정원을 다듬고, 잔디를 걷어내어 정원을 만들거나 넓혔다. 매일 몸을 움직이어도 할 일이 끝이 없다. 비가 오는 날이 공휴일만큼이나 좋았다. 그런데도 자꾸자꾸 꽃과 나무에 욕심이 간다.

새로 만들고 넓힌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는다. 욕심을 버리자며 시골살이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욕심을 내어도 되나 뒤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곧 합리화가 시작된다. 꽃과 나무는 어린 것을 사니 그렇게 비싸지 않아 감당할 만하고,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고 내 힘으로 가꾸는 것을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돈과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욕심이라 할 수 없지 않을까?

텃밭도 만들었다. 장날에 산 모종을 텃밭에 심었다. 심는 모습이 얼마나 어설펐는지 가지는 아랫집 형님이 심어 주었다. 가지 텃밭은 형님 텃밭과 가까이 있어 형님이 매일 물도 준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 지지대를 세워 주고 가끔 곁순을 따는 것이다. 곁에 있던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손이 부끄러워 가지를 딸 수 있으려나?
  
이곳에서 매일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고 있다
▲ 텃밭 이곳에서 매일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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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에서 봄은 몸이 조금 힘들다. 하지만 겨우내 보지 못하였던 예쁜 꽃과 새순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해 감탄하는 시기이다. 정원의 변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위로받는 시간이다. 매일 먹는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는 덤이다. 이제 어느 정도 정원도 만들고 가꾸어 놓았으니, 내년에는 몸이 조금 덜 힘들려나?

여름이 되니 오후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일하기가 힘들었다. 아내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일하자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쉬자고 하였다. 일을 마치면 나는 바로 씻어야 한다. 그런데 씻고 나면 일하기 싫고 하루에 두 번 씻는 것이 귀찮다. 아내가 허락했다. 오전에 일하기로.

이 시기에 하는 일은 풀을 뽑고, 물을 주는 일이다. 어린 풀을 뽑을 때 중간에서 잘려지지 않고 뿌리까지 딸려 나올 때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미 자란 풀은 호미로 파내어야 하는데 계속하다 보면 힘들다. 내가 심은 꽃과 나무는 정성을 다하여도 죽거나, 잘 자라지도 않은데, 관심 밖에 있던 요놈의 풀은 너무너무 잘 자란다. 뽑고 일주일만 지나면 텃밭이 풀밭이 되고, 앞마당은 게으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변한다.

풀 뽑는 것은 아내가 주로 하는데 일이 끝나면 손에 파스를 붙인다. 뿌리까지 뽑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고 한다. 내가 해보려 하니 어릴 때 다친 무릎으로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들어 아내에게 양보(?)하고 말았다.

대신 꽃과 나무 그리고 텃밭에 물 주는 것은 내가 한다. 물 주는 것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 주어야 할 곳이 흩어져 있어 두 시간이나 걸린다. 물을 주면서 꽃과 나무, 채소의 상태를 살핀다. 벌레가 심하면 천연 살충제를 뿌리고, 병든 잎은 따주고, 곁순은 솎아낸다.

장마가 시작되니 할 일이 생겼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꽃과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다. 제 자리가 아닌 듯한 꽃과 나무들에 제 자리를 찾아 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심어야 할 곳에 심었으면 되는데 생각과 경험이 짧은 주인을 만나 이렇게 고생한다 싶으니 미안하다. 그런데 꽃과 나무를 옮겨 심다가 보니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더니 죽고 말았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꽃과 나무를 옮겨 심는 좋은 때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정원을 가꾸기는 처음 해보는 일이다. 4월과 5월 초까지는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어났다. 이어 피는 꽃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이 꽃들이 모두 지고 나니 정원이 허전하다. 우리 정원에 피어날 다음 꽃은 달리아, 원추리, 분홍상사화, 국화이다. 달리아와 수국이 6월 중순부터, 원추리는 7월, 분홍상사화는 8월, 국화는 10월이 되어야 필 것이다.

이 사이에 피어날 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장미가 오뉴월을 장식하는데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여 미루어 두었다. 그 사이 정원을 메워줄 꽃들에 눈을 돌렸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예쁘게 핀 끈끈이대나물과 채송화, 곳곳에 씨를 뿌려 둔 봉숭아와 메리골드를 한곳으로 모았다. 이들이 오뉴월의 허전한 정원을 메워줄 것이다.

세상살이도 이러한 것 같다. 위기를 맞이하면 잊고 있거나 기대하지 않고 있던 이들이 발 벗고 나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을 이미 역사에서도 많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내가 이들을 소홀히 대해서 되겠나? 반성하면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의 공간을 따로 만들고 매일 물을 주고 가꾼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봉숭아를 화단을 만들어 한곳으로 모았다.
▲ 봉숭아 화단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봉숭아를 화단을 만들어 한곳으로 모았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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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메리골드를 화단을 만들어 한곳으로 모았다
▲ 메리골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메리골드를 화단을 만들어 한곳으로 모았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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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여름은 풀을 뽑고 식물들에 물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식물들이 더위와 장마를 이겨낼 수 있다. 때론 힘겹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여름 정원에 장식한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그동안 수고로움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하고 위로받는다. 그 위로가 단순한 위로로 끝나지 않고 기쁨으로 이어지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가을 우리 집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꽃은 국화이다. 이 꽃으로 국화차를 만들어 우리 집을 찾는 이들에게 한 잔의 차를 대접하고 있다. 국화차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시기이다.

가을은 식물들이 쉴 수 있도록 준비해 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국화가 질 때 꽃과 나무들이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가지를 치고, 흙을 조금 더 돋워주고 낙엽이나 보온재를 덮어 주어야 한다. 달리아 구근을 캐 보관해야 하고, 튤립 구근은 심어야 한다. 봄과 여름보다는 그래도 몸이 조금 덜 고달플 것 같다.
 
지난해 우리 정원에 핀 국화
▲ 국화 지난해 우리 정원에 핀 국화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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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하면서 무엇보다 놀란 것이 아내의 체력이 나를 역전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흔히 말하는 저질 체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기는 물론 주위의 지인들이 이를 다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를 앞서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오전만 하면 체력이 바닥이 나는데도 아내는 오후에도 호미를 들고 정원으로, 텃밭으로 나간다. 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여 주위를 어슬렁거리면 들어가라고 한다. 체력이 향상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러면 역할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나?

퇴임하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면 손도 꼼짝하지 않았다. 퇴임하고 언제부터인가 일어나면 오늘 먹을 물을 끓이고, 이불을 갠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씻고 나면 청소기 돌리는 것은 내 일이 되었다. 아직 밥과 빨래까지는 가지 않는데 이것도 이제 배워야 하나?

주말이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날짜도 모를 때가 있다. 이렇게 세상과 멀어지면서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가는 삶을 배워가고 있다. 더불어 내 역할마저도 바뀌고 있다.

태그:#시골살이, #자연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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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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