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리튬 건전지를 생산하는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37초 만에 23명이 사망한 화재 사건에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 경기도지사, 화성시장 등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구동성으로 '철저한 진상규명', '유가족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약속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긴급생계비지원 결정과 관련하여 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회사와 보상 문제 해결이 오래 걸리고 이번 사고 피해자들 대다수가 일용직,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전문가들의 논의와 재대본의 심의, 의결을 거쳐 빠르게 지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9일 유가족이 모여 있는 화성시청 옆 모두드림센터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 등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지원들이 이어졌다. 코로나 기간 체류 기간 연장을 받지 못해 비자 문제로 고민에 빠졌던 피해 유족도 법무부의 전향적인 방침으로 조만간 체류 자격 연장을 받을 예정이다.
그런데 9일 화성시는 돌연 유가족 지원 단계적 중단 계획을 밝혔다.
화성시의 유가족 지원 단계적 중단 계획
화성시는 직계 유가족 지원 기간을 이달 31일까지 연장하되 현행법상 가족 범위를 벗어나는 친인척과 지인들에 대한 지원은 오는 10일까지만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성시가 소통 중인 피해자 가족은 23가족 128명으로 이중 사망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은 47명이고, 형제·자매는 15명, 그 외 친인척은 66명이다.
화성시의 유가족 지원 단계적 중단 계획에 유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참사 피해자 중 상당수인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친척 간 유대가 깊은 문화적인 특성이 있다"라며 "특히 중국보다 물가가 높은 한국에서 지내야 하는 유족의 특수성도 있는 만큼 시는 유족의 특성과 취약성을 고려해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유족에 대한 숙식 제공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정명근 화성시장 면담을 요청하며 시장실에 진입하기 위해 직원들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화성시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못한 채 유족들은 시장실 앞에서 시장과의 면담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화성시는 법과 지침상 유가족 지원에 대한 중단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화성시의 주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재해구호법상 민법상 가족이 아닌 친족은 이재민이 아니라 지원근거 없음.
2.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상 주거지원 원칙 7일, 무한정 늘릴 수 없음
유가족 지원 중단, 화성시의 주장은 옳은가
재해구조법 제2조(정의) 제1호, 같은 법 시행령 제1조의 2는 '이재민'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재해구호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이재민"이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으로 인한 피해(이하 "재해"라 한다)를 입은 사람으로서 주거시설의 손실 정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재해를 입은 사람을 말한다.
재해구호법 시행령
제1조의2(이재민) 「재해구호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에서 "주거시설의 손실 정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재해를 입은 사람"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1.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이하 "재난"이라 한다)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 또는 실종된 사람의 가족
5. 제1호부터 제4호까지에서 규정한 사람 외에 재난으로 인한 피해(이하 "재해"라 한다)를 입은 사람으로서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구호기관이 구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화성시의 주장처럼 재난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 또는 실종된 사람의 가족으로 이재민을 제한한다. 그러나 재해구호법 시행령 제1조의 2 5호는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구호기관(경기도지사 또는 화성시장)이 구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이재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민법상 가족이 아닌 친족 및 지인으로 '이재민'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및 지자체의 의지의 문제로 해석된다.
화성시가 7일 주거지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화성시의 주장대로 이재민의 숙박시설 사용 경비지원은 7일간 지원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산의 범위 내에서 주거시설 및 임시주거시설 거주가 가능할 때까지 지원연장 가능"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화성시가 상황에 맞게 지원연장이 가능한데도 무조건 원칙을 앞세워 지원을 중단하려 한다는 유족들의 반발이 아무 근거없는 일방적인 주장은 아닌 것이다.
"돈이 없는가? 마음이 없는가?" 유가족들의 질문
화성시장실 앞에서 기약없이 시장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유족들 중 재중 동포들은 이렇게 외쳤다.
"화성시가 우리를 지원할 돈이 없는가? 마음이 없는가? 외국인이라서 차별하는 것인가?"
화성시는 이 질문에 지원할 수 있는 "법이 없다"고 동문서답했다. 그러나 법과 지침에는 가족이 아닌 친지들도 7일 이상 지원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다. 화성시와 경기도는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는 공허한 말이나 '법이 없다'는 동문서답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할 돈이 없는 것인지, 마음이 없는 것인지 제대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행정안전부가 만든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 가장 앞 부분에는 재해구호의 원칙이 담겨 있다.
"재난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은 국적, 인종, 종교, 성별 등을 떠나 국제법에 따라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재해구호의 조치는 재난에 취약한 어린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 등을 고려하여 차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