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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에서 남명 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강의를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에게 들었다.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에서 남명 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강의를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에게 들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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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좋아하던 송·죽·매·국의 사군자를 무척 좋아하였다. 시문 중에 이에 관해 여러 수를 남겼다. 역시 원문은 한자이고 여기서는 허권수 님의 번역이다.

국 화

춘삼월에 꽃을 피워 비단으로 성을 이루는데
국화 너는 어이하여 가을이 다 간 뒤 꽃 피우냐?
서리에 시들어 떨어지는 것 조물주가 허락지 않는 건
응당 저물어 가는 해의 다하지 못한 정을 위해서였겠지.

대에 부는 바람

세 친구 어울리던 쓸쓸한 오솔길 하나 나 있는데
한미한 사람 가장 동정하여 어려운 일 좋아하네
그런데도 싫도다! 소나무와 한 편이 되지 않고서
바람에 내맡겨 형세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소나무에 비친 달

솨솨 찬바람 소리 자주 시원스러운데
달과 어울리니 산뜻하면서도 근엄하구나
어느 곳엔들 크고 좋은 나무 없을까마는
덕 항상 지키지 못하고 이리 저리 마음 변하니.

눈 속의 매화

한 해 저물어 홀로 서 있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이 내렸구나
선비 집 오래도록 매우 외롭고 가난했는데
네가 돌아와서 다시 조촐하게 되었구나.

서리 속의 국화

찬 국화 만송이에 얇은 이슬 맺혔는데
짙은 향기 제일 많은 곳 뜰 한복판이구나
좋은 집에서 채색 꽃 입고 춤추는 중양절
술잔에 사람 얼굴 비춰 맑구나.
 4월 15일, 경남 진주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진주 문화를 찾아서- 남명 조식>의 저자인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와 함께하는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라는 주제로 떠나는 여행은 먼저 산청 덕천서원(德川書院)으로 향했다. 경의당 뒤편 남명 선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로 허권수 명예교수는 일행을 곧장 이끌었다.
 4월 15일, 경남 진주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진주 문화를 찾아서- 남명 조식>의 저자인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와 함께하는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라는 주제로 떠나는 여행은 먼저 산청 덕천서원(德川書院)으로 향했다. 경의당 뒤편 남명 선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로 허권수 명예교수는 일행을 곧장 이끌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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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사군자와 함께 연꽃도 무척 애호하였다. 남명도 다르지 않았다.

연꽃을 읊다

꽃봉오리 늘씬하고 푸른 잎 연못에 가득한데
덕스런 향기를 누가 이처럼 피어나게 했는가?
보거나! 아무 말 없이 별 속에 있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 빛나는 것 정도만은 아니라네.

일급 선비의 자격증이라면 문·사·철·시·서·화에 거문고를 탈 줄 알았다. 남명이 거문고를 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시를 남겼다.

거문고 소리

세 성인 오묘한 뜻 거문고에 있나니
조용히 거두는 곳에 참된 소리 있더라
부끄러워라! 그대 나에게 아양곡(峨洋曲) 권하나
보잘것없는 내가 어찌 음악 이해할 수 있겠나.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식평전#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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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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