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김성재, 아래 '연구소')가 주최하고 , 보건복지부·법무법인 태평양·재단법인 동천·대한변호사협회가 후원하는 2024년도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가 열렸다.
지난 2일 대한변협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연구소는 사법종사자의 장애인 인권 감수성 제고에 기여하고, 헌법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진정한 법 앞의 평등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확산, 조성하기 위해 올해로 9회째 사업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연구소 김치훈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 행사가 단순히 하나의 사업의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판결에 대한 기록이자 장애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주요한 역사라며, 보고회를 통해 장애인 인권의 목소리를 높이고 사법부가 장애인권을 더욱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문 3812건 중 디딤돌 12건, 걸림돌 4건, 주목할 판결 2건 최종 선정
이번 보고회 선정 대상 판결은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선고된 판례 중 '장애'를 언급한 판결로, 장애와 관련된 사안이 주요하게 다루어진 판결을 모두 선정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소 김아람 간사는 이번에는 전 영역의 소송 판결문을 포괄적으로 확정하였다며, 대법원·고등법원·지방법원·행정법원 등 법원홈페이지와 판례검색 사이트, 헌법재판소 판례검색, 전국법원 주요판결 검색 시스템, 대한변호사협회를 활용하여 총 3812건의 판결문을 수집했다고 하였다.
디딤돌·걸림돌 선정 작업은 1차로 41명의 변호사들이 수집된 판결문 중 142건을 뽑아, 2차 12명의 변호사들이 25건의 판결문을 선정했다. 3차는 변호사 4명과 시민단체 위원 4명으로 구성하여 판결문을 분석하고, 세 차례의 대면회의를 통해 디딤돌 12건, 걸림돌 4건, 주목할 판결 2건이 최종 선정되었다.
정신적 장애인 장애인콜택시 탑승 시 보호자 동반 규정은 차별, 디딤돌 판결
'디딤돌'로 선정된 이 사건은 보행상 장애 판정을 받은 A씨(주장애: 지적장애, 부장애: 뇌병변장애)가, 지적장애인은 반드시 보호자를 동반해야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서울시설공단의 규정으로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거부당한 사건이다. A씨는 지적장애인의 경우도 동반자 없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서울시설공단이 주장하는 지적장애인의 돌발 행동 가능성에 대해서, 돌발행동은 여러 외부 요인에 따라 발현되는 것으로 보이므로 모든 지적장애인이 운전원과 이용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돌발행동을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법원은 따라서 지적장애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돌발행동을 할 우려가 없는 지적장애인에게도 일률적으로 보호자 동반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취급에 해댱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부산, 대전, 인천, 광주, 강원, 제주 등지에서 지적장애인에게 보호자 동반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고려하였다고 설명했다.
배융호 이사(한국환경건축연구원)는 법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15조의 재화와 용역에서의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교통약자법'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판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디딤돌 판결로 선정하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30년간 착취당한 장애인의 권리 불인정, 걸림돌 판결
'걸림돌' 선정 이 사건 피해자는 지적장애인으로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사찰에서 생활하면서 사찰 내 청소, 농사, 각종 공사 등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사찰에서는 일체의 보시나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으로 장애를 이유로 피해자에 금전적 착취를 하였다. 사찰에서는 울력을 수행한 것이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았고, 폭행은 사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 2심 법원은 이 사건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여 노동력 착취를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파기환송 하였다. 대법원은 사찰의 울력이라는 주장과, 피해자가 승려의 자격이 없음에도 노전스님으로 대우하였다는 주장을 인용하여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과 별개로 사찰에서 발생한 12차례 폭행 피해사건에 대한 벌금형 선고에 대해서도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했다.
조인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대법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의미를 형해화하였다며, 사찰 내 비장애인 승려에게 보수를 주지 않은 것은 피해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지만 법원은 문언을 넘어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법원이 장애인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한 가해자의 행위를 '선행과 돌봄'으로 포장하였는 점, ▲해당 대법원 판결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한 다른 판결의 해석과 판단에 미칠 악영향이 심히 우려스럽다는 점, ▲향후 절대 인용되어서는 안될 판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의 표준휠체어 외 안전규정 부재는 평등권 침해, 주목할 판결
'주목할 판결' 이 사건은 표준 휠체어를 탈 수 없는 장애인인데,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이 특별교통수단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하면서, 표준휠체어를 이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설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이 청구인의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2019년 10월 28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사건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하여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표준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은 교통약자로서 차이가 없다는 점, ▲침대형 휠체어만을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표준휠체어만을 기준으로 안전기준을 정하는 것을 불합리하다는 점, ▲이 관련 규정을 마련하더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적 부담이 심해진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임한결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 판결이 입법부작위에 대한 흔치 않은 판결로 디딤돌 판결로 선정될 수도 있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동권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점을 아쉬운 이유로 꼽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 저상버스도입 의무불이행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헌법으로부터 저상버스 도입과 같은 국가 행위 의무가 도출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임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시혜적 급부'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헌법 개정 논의에서 기본권으로서의 이동권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모순된 판결, 잘못했다고 비판받아야
이날 보고회 토론자로 나선 김재왕 변호사(서울대 공익법률센터)는 사찰에서의 장애인 착취 사건 판결과 관련하여 '대법원이 잘못했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괴롭힘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차별하고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괴롭힘을 차별로 포함해서 보는 이유는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엉뚱하게도 차별의 개념을 가지고 괴롭힘의 범위를 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훨씬 축소하여 사실상 모순된 해석을 하였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가 장애인은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걸림돌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미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잘못된 판결을 널리 알려서 향후 장애인 차별 판단이 이뤄 질 수 있도록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딤돌·
걸림돌 법원의 장애인 인권 인식 변화에 기여
재단법인 동천의 이사장 유욱 변호사는 2015년도부터 발간되어 온 이 디딤돌·걸림돌 판결집이 변호사와 활동가들에게 요긴한 참고자료가 되어왔을 뿐 아니라, 전국 법관들이 장애인 관련 재판을 함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어 왔다며, 더디기는 하지만 우리 법원의 장애인 인권 인식이 변화하여 온 데어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고 평가했다.
유 이사장은 이번 보고서에서 디딤돌 판결이 이전에 비해 대폭 증가한 것이 법원의 바람직한 변화인것 같아 반갑다며, 법원의 장애인 인권의식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파이팅챈스 블로그에 함께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