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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피곤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순전히 내 욕심 때문에 그렇다. 그놈의 한글자라도 더 가르쳐내고야 말겠다,라는 아직은 버리기 힘든 소중한 욕심.

나는 지난 7월부터 동네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작은 글쓰기 교습소를 시작해 해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습소에 자발적으로 등록한 아이는 아직까지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 손을 꼭 잡고, '엄마 아빠 나 이곳을 다녀야겠어요, 저에게는 읽고, 말하고, 쓰고, 이 공부가 꼭 필요하니까요'라고 말하는 초등학생이란 유니콘과도 같을 테니까. 마치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모습이다.

 동네 글쓰기 교습소인 <쓰고뱉다> 풍경
동네 글쓰기 교습소인 <쓰고뱉다> 풍경 ⓒ 쓰고뱉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 손에 살포시 이끌려 이곳에 착륙한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먼저 다니는 친구를 따라서 강남 오듯 온 아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악의는 결코 없지만, 무척 자연스럽게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속성을 머금은 방패를 하나씩 들고 수업에 임한다.

한가지 고마운 사실은, 나는 아이들이 그 방패를 내려놓게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저 공부가 아닌 관계에 우선을 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금세 방패를 내려놓는 광경을 매번 목격한다.

활짝 웃으며, 첫인상을 그렇게 좋게 먹고 들어가도 싸움은 매수업 시간마다 발생한다. 살포시 내려놓았던 방패를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참 많이 생각한다. 결국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가르치기 힘든 것이구나를. 일단 배우려는 마음, 그 마음 하나만 딱 들고 오면 나는 정말 내 존재를 쏟아부어서 온갖 좋은 것을 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의 그 방어기제와 매 수업 시간마다 싸우고 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그 방패를 뚫어내고, 기어코 한글자라도 더 가르쳐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마치 검투사라도 된 것처럼 열정적으로 내 존재를 활활 태우는 편이다.

'힘 조절 해야 한다'는 조언

효과는 확실하다. 어려운 원리는 아니다. 내가 땀을 흘리며 준비하고 가르치면 애들은 침을 흘리며 졸고(!), 내가 눈물을 흘리며 준비하고 가르치면 애들은 땀을 흘리고, 내가 피 토하듯 열심히 준비하고 가르치면 애들은 그제야 눈물을 흘린다(물론, 이건 은유적 표현이다. 그만큼 내가 얼마큼의 가르쳐내고야 말겠다는 전투력을 준비하고 쏟아내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흡수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의 강의를 마치고 나면 목이 아프다. 체온도 적절하게 올라가 있다. 약간의 두통까지 여운으로 남는다. 가까이 지내는 분 중, 이전에 교습소를 잘 운영하셨던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씀해주신다. '초반이시라 그 열정은 너무 이해되지만 힘 조절 하셔야 해요, 멀리 보시면서 차근차근 가셔야 하니까요. 안 그러면 그러다 지쳐서 쓰러집니다'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렇지, 그 말이 맞지' 하면서 힘 조절을 해야지 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어느샌가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그놈의 방패만 보면, 나는 창이 되고픈 병에 걸렸는지 기어코 뚫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이런 딜레마 가운데 지내는 나날들인데, 어느 날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내 모습을 아내가 보고는 말한다. '나도 초등학생 때 당신 같은 선생님에게 배웠으면 진짜 공부가 뭔지 알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애들은 너무 좋겠다, 그렇게 재미있게 공부를 해서.'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두통이 싹 가셨다. 내가 뭘 고민하고 있었나 싶었다. 어차피 썩어지고 없어질 몸, 녹스는 것 보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낫지. 이 한 몸 불태워 아이들에게 내가 추구하는 '쓸모 있는 공부'가 무엇인지 아주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이번 생에서 그보다 나은 일이 뭐 있겠나 싶었다.

그래, 이건 쓸모 있는 교육이다. 나는 읽고, 말하고, 쓰고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진짜 '공부'를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 '삶이란 살아가는 것, 인간, 올바름, 사랑, 아름다움, 함께 사는 것' 등을 수업 속에 잘 녹여서 힘차게 외친다.

이러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조금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남는 장사이다. 아이이라는 세계에, 나라는 시절이 궤적을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훗날, 그 궤적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올바른 길로 걸어가기를, 참 사람이 되기를, 끝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안고 오늘도 나는 나를 기꺼이 태우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쓰고뱉다#글쓰기교습소#문해력#어린이라는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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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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