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5년 치 국정감사입니다. 5년 전 이 자리에서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가 안 된다고 한 경찰들, 지금 자료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피해자에게 직접 초동 수사해 오라고 한 경찰들에게 질의했다면 딥페이크(불법합성물) 피해자들의 원통함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지난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파헤친 '추적단 불꽃' 원은지 활동가의 목소리가 떨렸다.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원 활동가는 울음을 참으며 그동안 수면 위로 떠오른 서울대·인하대 등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들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그는 "5년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앞장서서 수사해 온 경찰들을 최근 만날 때마다 물어보니 가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검거돼 본인의 죄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라고 말하던데 그걸 아는 분들이 왜 그러셨냐"라며 그동안 미진했던 경찰 수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원 활동가는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경찰이 딥페이크 수사를 반려한 기간이 5년이 넘었고 범죄를 방관했다는 걸 범죄자들도 안다. 정치권에서 지금이라도 경찰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면서도 "딱 하나만 부탁드린다. 민원 창구에서 피해자들을 받는 수사관들의 전문성과 의지를 고취시켜 주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윤건영 "현장 너무 몰라"... 경찰청장 "위장수사 열어달라"
이날 오후 경찰청 대상으로 열린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고인으로 부른 원은지 활동가와 5분가량 딥페이크 수사 실태에 관한 질의응답을 이어가며 조 청장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윤 의원은 "원 활동가가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가 딥페이크 사진 여러 장을 신고하니 경찰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직접 구해서 오라고 한다. 그러고 얼마 뒤 텔레그램 방은 삭제되고 사건은 종결 처리됐다"라며 "또 수사관이 텔레그램 단톡방에 위장 잠입 수사를 시도하면 해당 방 운영자가 '너네 한국사진도 어디까지 나갔어'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답을 못하면 강퇴를 당한다. 수사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원 활동가는 "5년 전부터 '지인능욕'으로 불리어 온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제보를 받아왔다"라며 "지금도 수사기관에선 피해자들에게 텔레그램은 수사 협조가 안 된다고, 지금 자료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한다. 앞선 사례들은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의원은 지난 8월 경찰청에서 발표한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단속 실시' 보도자료를 언급하며 "학교전담경찰관(SPO)를 중심으로 범죄 첩보를 수집하겠다는데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이분들께 딥페이크나 텔레그램 성범죄를 해오라는 것 자체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며 "말로만 딥페이크 수사를 제대로 하겠다며 교육과 예산을 줄이고 잘 알지도 못하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라고 꼬집었다.
질의가 끝난 뒤 경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으로까지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수사 의지를 밝혔다. 조 청장은 "성인 성착취물에 대한 위장 수사는 현행법상 안 되고 있다. 과거 서울대 N번방 사건도 경찰이 강제 퇴거를 당하고 나서 원은지 참고인이 협조해 증거를 수집한 결과 진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라며 "제도적으로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성착취물도 경찰이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을 터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열심히 하는 건 제가 책임질 테니 제도적인 길을 열어주시길 부탁드린다"라며 "텔레그램 측에도 저희들이 계속해서 압박했고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는 이전과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