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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 사학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지 18개월만에 복직하는 두 교사. 왼쪽 김종선, 오른쪽 정치원 교사가 활짝 웃고 있다.
ⓒ 박병춘
두 교사가 환하게 웃었다. 긴 여정이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초로 부패 사학으로부터 해임된 두 교사가 18개월 만에 복직을 이뤄냈다. 주인공은 정치원(51·국어), 김종선(48·과학) 교사. 두 교사는 23일부터 대전 동명중학교(교장 김영길)에 원직 복귀한다.

그렇다면 2006년 2월, 두 교사가 해임되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장면 1] 학교 중앙 현관에 매점 만든다고 도서실은 나 몰라라

학생들에게 동선도 가깝고 중앙 현관 옆에 있던 도서실을 옮기려는 공사가 예정됐다. 도서실 자리에 매점을 만들고 도서실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곳으로 옮기겠다는 것이었다. 이용 거리가 멀고, 직원화장실 앞이며, 비 오면 물이 스며들고, 도서관 아래 음악실이 있다면 장소로서 적합할까?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부당성을 호소했으나 이사장은 공사를 강행하려고 했다.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이에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두 교사를 해임하는 징계 사유로 삼았다. 한편 비가 오는 날이면 교실에 양동이 너덧 개를 배치해서 새는 빗물을 받아내며 수업을 했다.

[장면 2] 비 오는 날 학생들은 네 발로 기어서 등교

김종선 교사가 1학년 4반 담임 시절. 학급에서 학생 7명이 무더기 지각을 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마침 비가 내렸는데 경사가 너무 급하고 미끄러운 데다 안전장치도 없이 학교에서 강행한 진입로 공사로 등굣길 학생들이 네발로 기어올라왔기 때문이다. 1억 원이 넘는 구청 예산으로 급경사 진입로를 우회토록 만들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직선 진입로 공사를 다시 하여 마치 등산로처럼 변하고 말았다. J이사장은 설계도와 토목기술자도 없이 공사를 밀어붙였다.

비가 오면 황토물이 흘러내려 인근 가정집으로 스며들고 주민 진정서가 청와대까지 날아들어 공사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이 떨어졌다. 이듬해에 재공사가 이루어졌지만 결국 멀쩡했던 진입로가 경사만 더 심해진 채 완공됐다. 교사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사 예산을 학교운영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여러 교사들이 부당성을 호소했으나 관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장면 3] 기름통 4등분 선 긋고 교실 난로에 4분의 1만 석유 공급

겨울철 영하 3도를 밑도는 교실. 어린 중학생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20ℓ 기름통에 4등분 선이 그어져 있고, 교실마다 한 등분에 해당하는 5ℓ가 난로 주유구로 들어간다. 오전 11시가 채 안 되어 난로 기름이 떨어진다. 아이들이 오리털 외투를 입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교실, 더는 기름 공급이 없다. 교사들이 관리자에게 기름 공급을 호소한다. 더 진전이 없는 학교.

한마디로 말해 학교 현장이라고 볼 수 없었다. 교사들이 부조리에 맞서 싸울 것을 합심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부모들도 흥분했다. 재단과 학교 관리자들의 부도덕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속앓이하던 교사들이 하나로 뭉쳤다.

2005년 5월 동명중 교사 19명이 부패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사협의회를 결성했다. 그래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안을 건의하고 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J이사는 교사협의회가 불법임의단체라며 해체를 종용했다.

이후 갈등 국면이 지속되자 동명중학교 교사들은 합법단체인 전교조 가입을 선택했다. 곧바로 분회창립대회를 열었고 동명학원재단은 분회장 정치원 교사와 사무장 김종선 교사를 해임하기에 이른다. 당시 성광진 전교조 대전지부장과 송치수 사무처장의 노력으로 동명 분회원들은 힘있게 뭉쳤고 지난한 법정 싸움을 거쳐 복직에 이르렀다.

다음은 지난 21일 복직을 앞둔 두 교사와 나눈 일문일답

"기득권의 강한 공생 톱니바퀴에 절망감 느껴"

▲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 정치원 교사
ⓒ 박병춘
-복직 소감을 말해 달라.
정치원 교사: "올해 3월 복직이 가능했는데 늦었지만 정말 기쁘다. 여전히 교장은 사과하라고 종용한다. 이해할 수 없다. 해직될 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벌써 중3이 되어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하다. 학교 민주화를 위해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김종선 교사: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다. 나의 가족, 친지, 동교 교사 등 모든 주변인들이 좋아했지만 앞으로의 과제들을 생각하면 암담하기도 하다. 여전히 학교 정상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 수많은 난제가 있다. 도와주신 분들께 화답하는 길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길뿐이다. 끈질긴 사명감으로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18개월 해직 중 싸움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정치원: "학부모님께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서울에서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을 받을 때 20여명의 학부모들이 참관했다. 당시 학부모 회장이 '우리 선생님들을 학교로 돌아가게 해 달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하라!'며 호소했다.(김종선 교사 눈물)

또한 67명의 어머니들이 학교에서 시교육청까지 함께 걸으면서 학교정상화를 위한 시위에 동참했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싸웠다. 학교정상화와 복직을 위해 싸워 주신 학부모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 "더 치열하게 아이들 잘 가르치겠습니다." - 김종선 교사
ⓒ 박병춘
김종선: "해직된 후 싸움 과정에서 학생들이 우리 둘을 보면 그저 꼭 껴안았다. 그때마다 내가 존재해야 할 의미를 얻었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다짐했다. 교사의 처음과 끝은 아이들 아닌가. 우리 아이들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정치원: "학교를 경영하는 사람이 잘못하는 일이 많음에도 그 잘못을 분명하게 밝힐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기득권이 지닌 공생 톱니바퀴가 워낙 강하여 이를 시정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가 정말로 힘이 들었다."

김종선: "다 힘들었다. 우리 둘이 학교 정상화 이외의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비난을 들었을 때 정말 비참했다. '정의와 진실은 현실 속에서 끝없이 패배한다. 다만 긴 역사 속에서 승리할 뿐이다'라는 조정래 소설 '한강'에 나오는 구절을 명심하며 지냈다."

-복직에 임하는 각오는?
정치원: "동료 조합원들을 많이 괴롭혔다. 우리만 보면 도망갈 정도다.(웃음)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들, 지역 언론, 교육계, 여러 사회시민단체, 전교조대전지부 등 총체적인 도움 속에서 복직에 성공했다. 학교 비리를 감추는 것이 미덕이 되는 풍토를 바꾸겠다. 교재 연구에 충실할 것이다. 오직 아이들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교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김종선: "전임 성광진 전교조 대전지부장과 현임 전양구 지부장께 감사하다. 잘 싸워주셨다. 전교조 대전지부 사무실을 명신학원 정상화를 위해 썼다. 우선 청소를 깨끗이 하고 돌아가겠다.(웃음) 막상 학교에 돌아가려니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동료 조합원들에게 진 빚이 많다. 이 나라 어떤 사학에서도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에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을 우리 교사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두 해직 교사가 복직하기까지...
대전 동명중 투쟁 상황 주요 내용 요약

□ 2005년
6월 29일 동명중 교사 19명 전교조 가입

□ 2006년
2월 27일 분회장 및 사무장 해임 통보
3월 31일-4월 3일 15:00-22:00 특별감사 촉구 교육청 농성
4월 22일 2차 징계위원회(정치원, 김종선)
5월 4일 해임 결정문 접수(동명중학교 징계위원회)
6월 22일 충남지노위, 부당노동행위 판정. "학교법인 명신학원 동명중학교(이사장 이진복, 교장 김영길)가 2006년 3월 14일 및 5월 6일에 정치원 분회장과 김종선 사무장에게 행한 직위 해제 및 해임 처분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므로, 두 조합원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직위해제 및 해임 기간 동안 근로하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주문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교내 게시판에 게시하라."
9월 6일-9월 28일 임시이사 파견촉구 천막농성(23일간)
10월 2일 동명중학교 임시이사 파견요청 학부모 655명 민원서류 접수
11월 1일 교사·학부모 10리 걷기대회(동명중에서 동부교육청)
11월 7일 동명중 학교정상화 관련 시정명령 하달(계고기간 15일)
11월 21일 중앙노동위원회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 판정

□ 2007년
1월 17일 중노위, 2006이행4 학교법인 명신학원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신청사건에 대한 긴급이행명령신청 의결
1월 19일 동명중 교사 3보1배 진정서 제출 투쟁(임시이사 파견 촉구)
1월 24일 동명중 학부모 집단전학 민원제출 투쟁(11:00, 동부교육청 민원실)
1월 24일 학교 정상화 염원 동명중분회 철야 단식 천막농성
1월 26일 명신학원 임원진 7명 중 6명에 대한 승인취소 처분
3월 21일 조명현 외 5명 대전지방법원에 동부교육청교육장을 상대로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 등 취소 소송 제기(2007구합1349)
8월 8일 조명현 외 5명이 낸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등 취소소송 기각
8월 9일 명신학원 이사회, 정치원, 김종선 조합원 복직 판결 / 박병춘


#사학비리#동명중#정치원#김종선#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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