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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낙안군 지역에서 두 가지 주제를 빼면 할 말이 많이 줄어든다. 그중 하나가 일제강점기 때의 얘기며 또 하나는 사상대립으로 인한 이념전쟁이다. 모두 색깔이 다른 깃발 아래서 죽고 죽여야만 했던 비극적 사건들로 이 땅은 그런 가슴 아픈 설움을 안고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우리 사회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유독 이곳에서 그것들을 빼 놓고는 할 얘기가 없어지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침략 거점도시로 전남지역에서 목포 다음으로 일본인 숫자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사상 대립이 심했던 시절 율어는 빨치산 해방구로, 하송마을은 좌익 마을이라며 모스코바라 불릴 정도로 색깔이 진했기 때문이다.

 

좌익 마을이라며 모스코바라 불렸던 하송마을

 

순천시 낙안면에는 '모스코바'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낙안 평야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외서면으로 넘어가는 재를 끼고 있다. 낙안읍성에서 보면 북쪽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1950년 전후해서는 100여 가구가 살았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

 

지난 16일 찾아간 하송 마을은 여느 시골 마을처럼 평온했다. 마을 입구에서 장에 내다 팔 채소를 다듬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6.25 전후해서 많은 피해를 본 마을이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고개를 돌린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진한 가슴앓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를 비롯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아온 지난날들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쭈그리고 앉았다가 엉덩이를 철퍼덕 땅에 대고 듣게 된 얘기들은 '누가 무슨 일을 했고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구는 산속에서 숨어서 몇 년씩 칡뿌리로 연명하면서 살았고 다른 마을에 사는 누가 여기에서 누구를 산채로 불태워 죽였고 누가 누구를 총살했고...'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좀 허무하고 씁쓸함을 느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파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지금 같은 세상에 이 얘기를 하나하나 글로 내 놓는다고 이 분들의 삶이 나아질까 하는 의구심과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저 "마을 사진 좀 찍겠습니다" 하고 일어섰다.

 

마을은 빈집들이 많았고 쓰러져가는 집들도 많았다. 관련 있다는 집 몇 군데를 촬영했다. 당시 이곳엔 남로당 낙안면 지부가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반군에 가담했으며 피해도 다른 지역보다 많은 43명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만석꾼이었으며 일제 때 일본 유학 중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고향으로 돌아와선 마을 청년들에게 사상을 전파하고 청년회를 조직한 K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마을을 망쳤거나 한 사람이 마을 주민들 사상을 개화시켰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사람들이 여기를 모스코바라고 부르는데 마을 주민들 기분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한평생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권력이나 돈을 쫓아다니는 간신보다는 떳떳하지 않느냐"는 아주머니의 대답은 뭘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있는 주릿재에 올라 율어 해방구를 보면서

 

낙안면 하송마을에서 외서면으로 넘어가는 빈기재를 넘어 다시 벌교쪽으로 가다가 율어로 향했다. 이 지역의 또 하나의 모스코바, 율어 해방구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곳엔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비가 있다.

 

약 10여분을 달려 주릿재 정상에 도착했다. 주릿재에 올라 해방구라고 하는 보성 율어를 내려다보면 방죽 하나가 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야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빨치산들은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토지개혁도 하고 공동분배를 실현했다.

 

문학비에는 '징광산 줄기와 제석산 줄기는 벌교를 넓게 보듬고 있는 벌교의 상징이다. 또한 두 산줄기의 뿌리는 저 멀리 태백산맥에 닿아 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면 땅속의 실뿌리까지 흔들린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 끝 벌교를 무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벌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의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다'라고 표기해 놨다.

 

소설 속에서 염상진은 해방구를 통해 인민해방을 꿈꾸지만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를 추종했던 하대치는 그저 어둠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소설은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의 비극임을 암시하고 있다.

 

필자는 소설과 그 문구를 대비하면서 읽는 도중 문득, 101년 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군된 낙안군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지 않은 그 무언가는 바로 같은 고을이었고 같은 형제인데 갈라놓아 지금까지 나뉜 이곳은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의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주릿재 정상에서 발길을 돌리는데 가슴은 좀 답답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하송과 율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한평생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권력이나 돈을 쫓아다니는 간신보다는 떳떳하지 않느냐"는 그 아주머니의 얘기가 조금의 위안이 되긴 하지만...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49] 낙안군 음악인 오태석과 채동선은 누구인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율어, #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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