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곳에 살지 않으면서 주민등록을 그곳으로 옮겨놓는 행위나, 그곳에 살면서도 다른 곳에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경우 등 실제로 사는 곳과 다르게 엉뚱한 곳에 이름을 올려놓는 행위가 위장전입에 속한다.

 

순천시와 보성군의 경계선 00마을엔 40년 가까이 위장전입한 사람도

 

순천시와 보성군의 경계선, 정확히 말하면 길 하나 사이를 두고 한쪽은 낙안이며 한쪽은 벌교인 00마을에서는 위장전입(?)한 형태가 세 가구나 된다. 사는 곳은 순천 땅이지만 자신의 이름은 보성군에 가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우습지도 않게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기준으로 시·군 경계선을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현재 순천 땅에는 교회를 비롯해서 마을 회관 등 다섯 채의 집이 있고 사람이 거주하는 집은 세 가구며 길 건너 보성 땅에는 40여 채의 가옥이 있다.

 

왜 자신이 실제 살고 있는 집(순천시)에 주소를 두지 않고 길 건너인 00마을(보성군)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을까? 사연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는 것은 물론 인위적이고 강제적으로 나눠놓은 행정구역이 주민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과 불이익을 주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눠야 할 근거도, 충분한 사유도 없이 그저 자로 재서 금을 그어버린 행정구역 쪼개기에 있다고 지적을 한다. 그런데 만약 주민들이 지역을 공중분해 시킬 목적으로 강제적으로 분해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

 

P씨의 사연은 강제 폐군된 낙안군의 사연과 너무나 닮아있어

 

P씨는 40여 년 가까이 길 위쪽인 순천시 땅에서 살고 있다. 원래 길 아래인 00마을에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살았는데 형님이 결혼을 하고 자신도 따로나와 살아야 할 형편이 돼 길 위쪽 쓰러져가는 집을 구입해서 다시 짓고 그때부터 살고 있다. 하지만 주소는 옮기지 않았다.

 

"왜 지금껏 주소를 옮기지 않았냐?"는 필자의 질문에 P씨의 대답은 한참 길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사람 모두가 어릴 적부터 함께 어울리던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자신만이 학교에서 반이 갈라지는 것처럼 전혀 다른 곳에 가 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은 현실적인 불이익 때문이었다. P씨는 평생 농사를 지어오면서 그동안 보성쪽(벌교) 농협이나 관청과 관계를 맺었는데 만약 자신이 순천시로 주소를 옮기게 되면 낯선 낙안이라는 곳에 가서 새롭게 사람을 사귀어야 하고 농협 대출을 받거나 행정업무를 볼 때도 다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

 

또 그런 어려움을 모두 극복한다고 해도 사는 곳이 달라 마을 주민들과는 정보와 혜택이 다를 것이고 그러다 보면 마을 주민들과 거리감도 생기고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도 있다고 한다.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데 다른 곳으로 가면 결국 행세를 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3미터도 안 되는 길 사이에서 평생 함께 살았던 가족 형제 같은 사람들과는 멀어지고 1킬로미터나 떨어진 생소한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면서도 그 사회에 낄 수 없는 전학 온 학생이 돼 버리는 생뚱맞음. 이것이 현실이었다.

 

끝 무렵에 P씨는 "분명 순천시로 주소를 옮기면 보성군 보다야 좀 더 나은 혜택이 있겠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40여 년 이대로 살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고민해 봤지만 앞으로도 주소를 옮길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입바른 소리를 잘 하는 지역민 중에서는 "위장전입으로 P씨를 처벌하려면 먼저 행정부터 처벌하라"고 주장한다. "행정구역이 사리에 맞고 똑발라야 주민의 삶이 편하지 저렇게 만들어놓고 곁눈질하면 주민은 어쩌란 말인가?"하고 한탄했다.

 

터무니없이 경계선이 나눠져 있는 00마을과 40여 년 동안 순천시에서 살면서도 보성군에서 주소를 옮겨 오지 못하는 P씨의 경우는 101년 전 억울하게 폐군되고 지역민들을 강제로 나눠놓은 낙안군의 경우와 너무 흡사하다. P씨의 위장전입(?)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할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09-050] 낙안군의 음악인 오태석과 채동선을 찾아서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낙안, #벌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