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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오늘 광주 망월동에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시민들의 순결한 피가 꽃잎처럼 흘렀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지금 망월동에는 무엇이 또 꽃잎처럼 흐르고 있을까? 지난 20년동안 민주화의 성지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더 외로워진 것 같다는 광주, 그 한맺힌 울부짖음은 여전히 대답없는 메아리로 남을 것인가?

5.18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그 대답의 메아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의 진보적 음악인들이 "5.18은 이제 세계의 5.18"이라며 5월 18일 밤 7시 반 광주 망월동에 집결한다는 소식이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이하 민음협)가 준비하고 있는 국제평화음악제 'HUMAN VOICE'가 바로 그것.

국제평화음악제 'HUMAN VOICE'는 예술을 통해 5.18 정신을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확산시켜 세계적 민중운동으로서 5.18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민주와 평화의 근현대를 함께 해 온 세계각국의 음악팀들과 국내음악인들이 함께 만드는 국제음악제다.

"국내외의 진보적 음악인들이 모두 모여 5.18 정신인 평화와 인권의 대합창을 벌이는, 20년만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국제적 진보음악축제이며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례적인 국제평화음악제로 자리매김 할 계획"이라는 것이 행사 실무를 맡은 조현주씨(민음협 기획실장)의 말이다. 실제로 외국의 대중음악인이 우리나라를 찾아 콘서트를 벌였던 적은 많았지만 제 3세계의 진보적 음악인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우리나라를 찾은것은 거의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국내에서 참가하는 진보적 음악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모두 민음협 소속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이들은 노찾사 출신으로 '자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등을 부르며 90년대 민중가요의 맥을 이어온 안치환과 노래마을 출신으로 힘있는 무대매너를 자랑하는 이정열, 그리고 국악 가스펠송을 부르며 정신대 할머니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온 홍순관, 광주의 아픔을 깊은 서정으로 달래온 '바위섬' '직녀에게'의 김원중, 박문옥과 최근 주목받는 손병휘, 김가영, 윤정희 등 젊은 포크송 가수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 '삶·뜻·소리'등 음악성과 실력면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평.

이번 행사에 함께 하고 있는 홍순관씨는 "5.18이 벌써 20년이나 지났나 싶다"며 "외로운 노래를 불러왔던 사람들이 이 외로운 풍경에서 같이 만난다는 것, 그리고 더이상 이런 외로운 풍경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세계의 음악인들이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음악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렇다면 멀리 대한민국 광주까지 찾아오는 해외의 뮤지션들은 과연 누구일까?

유명도보다는 실제 진보적 음악활동에 대한 열의를 중심으로 선발되었다는 이들은 먼저 일본의 우타고에(うたごえ)가 있다.

우리말로 '노랫소리'라는 뜻의 일본의 우타고에는『합창을 중심으로 한 서클 활동을 기조로 하는 대중적·민주적인 음악운동이며, 이외에 뛰어난 음악유산을 계승하고 전문가 및 대중적 창작활동과 관련, 협력하여 평화라는 명목하에 건강한 노래를 전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규약 제 2조)의 성격과 목적을 가지고 '우타고에는 평화의 힘', '노래는 투쟁과 함께', '우타고에를 삶의 힘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활동을 계속하여 온 순수민간노래집단으로 1999년으로 50주년을 맞이한 저력있는 집단이다.

세계 7개국어로 불리워진 「원폭을 용서하지 않으리라」,「노력하자」라는 곡과 오키나와반환투쟁중의「오키나와를 돌려 달라」라는 곡이 대표곡인 우타고에 운동은 일관된 평화운동이나 노동운동과 결부되어 전국에 퍼져 국민적인 음악운동으로서 내외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민음협과는 2년전부터 활발한 연대활동을 벌여왔고 99년에 이미 금남로에서 열린 5.18 기념무대에 서서 자신들의 노래와 함께 '아침이슬'을 불러 큰 박수를 받은 경험이 있어 더욱 친숙하다. 이번 행사도중 전북지역 여성농민노래패 '청보리사랑'을 만나기로 하는 등 꾸준한 연대활동도 흥미를 끈다.

또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페루의 음악인들도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를 찾는다.

1960년대부터 중남미 각지에서 일어난 음악운동인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운동)'을 함께하는 이들은 멕시코 Gabino Palomores(누에바 칸시온 회장)과 아르헨티나 Delfor Sombra, 페루 Carmina Cannavino 외 연주자 2인등이다. 페루의 국제가수 카르미나 칸나비노에 따르면 "'누에바 칸시온'은 상업주의에 반대해서 잃어버려가고 있는 자국의 민속음악을 부흥하는 한편, 사회의 불공정과 인권등을 테마로 하여 노래해 온 음악운동집단이다"는 소개다.

우리나라의 민중가요운동과 흡사한 역사를 지닌 이들은 지난 80년대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작품을 창작한 예술인들이 그러했듯이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의 군사정권하에서 심한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73년 군사 쿠데타에서 본보기로 학살을 당한 칠레의 빅토르 하라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투옥을 당하거나 망명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굽힘없는 활동을 벌여 각국의 민주화 운동의 기수로서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한다. "정치적인 슬로건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은 의미의 사랑이나 인간적인 노래가 많고 음악적인 수준도 매우 높다"는 조현주씨(민음협 기획실장)의 귀뜸.

이밖에도 1999년 대만에서 지진이 일어난 뒤에 구성되어 재해 부락 연대 투쟁을 조직하며 문화전선에서 부드러운 투쟁을 벌인 대만의 '원권회 부락 공작대'의 무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날 무대는 5.18 정신을 함께하는 국내외 음악인들의 자유로운 개별무대를 거쳐 마지막에 5.18 항쟁정신을 상징하는 대합창으로 감동적인 마무리가 지어질 예정이다.

사이사이 무대를 수놓을 5.18 당시의 생생한 장면들이 노래의 맛을 더욱 살려줄 것이다. 5월 18일 밤 망월동 묘지를 수놓을 노래소리가 외롭게 숨져간 이들의 넋을 달래고 산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진혼곡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세계 NGO들의 연대가 활발한 요즈음 5.18 20주년만에 열리는 국제적 음악행사를 통해 국내외의 진보적 음악인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문화예술계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었던 제 3세계의 진보음악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는 삶·뜻·소리의 가수 김가영씨의 이야기처럼 지역과 경험은 다르지만 민주와 평화를 위한 음악운동에 함께 했던 음악인들이 이번 무대를 통해 서로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 진보음악의 깊이도 넓어지고, 5.18 정신도 더욱 세계화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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