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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랜드 이스라엘에 도착하다

이렇게 지겨울 수가...
서울에서 일본까지 1시간 30분, 그리고 또 다른 1시간 30분을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런던까지는 대략 9시간이 걸렸다. 으... 그리고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11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4시간의 마지막 비행 후, 내가 도착한 곳은 홀리랜드 이스라엘이었다. 때는 98년 7월 1일.

기분이 이상했다. 새벽 5시 40분,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불빛들은 이상하리만치 둥글게 둥글게 모여 있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기엔 혼자, 너무 먼 곳에 와 있었다.
공항 앞에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지중해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새벽이라 그리 덥지는 않았지만, 흥분되고 긴장된 기분에, 하루가 넘게 비행기에서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해서인지, 어질어질 몽롱한 가운데 이국의 공기를 들이마셨던 것 같다.
"이제 나는 키부츠 발룬티어다(Kibbutz Volunteer).."

UNITED 222번 공항버스를 탔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 근처에 가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스라엘 키부츠에 가기 위해 여행사를 통하지 않았다. 키부츠를 알선해주는 현지사무실(Meira's Office)에 팩스를 보냈고, 약속한 날짜에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이른 새벽이라 사무실은 잠겨져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그 곳에 남겨두고 돈 가방만 들고 거리로 나섰다.

조그만 수퍼마켓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시간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었다. 햇살은 짱짱, 더워지기 시작한다. 이글이글거리는 눈에, 예수같은 머리를 한 남자들. 이곳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섹시하다. 잘 생긴 남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느라 빵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길거리에서 3시간을 돌아다니고, 사무실에 가보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움푹 패인 눈이 서먹서먹하다. 간단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몇 장과 보험료, 키부츠 알선 중개비로 400셰켈(16만원 정도)을 지불했다.

친구들이 생겼다. 승희와 윤경, 네덜란드의 셰이프린과 케더린이 나와 함께 키부츠 크파길라디로 가게 되었다.

얘기를 하는 내내, 소매없는 티셔츠를 입은 캐더린의 브래지어 끈이 내려왔다. 내가 두 번 정도 위로 올려주니까, "우린 신경 안 써"란다. 당당녀다! 우리 다섯명은 4번 시내버스를 타고, 세계 최대 규모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2층, 24라인에서 키리앗 시모나(레바논에서 자주 폭탄을 떨어뜨리는 곳, 이스라엘 최북단)행 버스를 탔다.

아.... 텔 아비브를 출발한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벌거벗은 산. 말라버린 나무, 꽃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5미터도 넘는 키가 큰 나무들이 거리 곳곳에, 군복을 입은 남녀들이 커다란 총을 가지고 여기저기에 몰려 있었다.

버스에 홀로 앉아 창 너머만 바라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니, 너무도 황량하고 삭막한 이 곳에서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도시생활에 익숙한 내가, 한국 시골도 아니고, 먼 이국땅 시골에서 뭘 하자는 건지...
이스라엘 키부츠에 관해 공부도 하고, 자료도 모았지만, 이 정도로 후미진 곳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갑자기 눈이 깜깜해지고,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덩어리가 가슴께에 꽉 찼다. 내가 왜 여길 온다고 했을까? 그것도 혼자, 용감한 척!
도움이 필요해도 주변에는 한국 사람 한 명 찾기 힘들고...

이런 저런 고민을 끌어안고 4시간쯤 지났을까? 키리앗 시모나란다. 국경이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군인들 수도 많아 보인다. 우리 일행은 사무실에서 알려준 대로 크파길라디행 버스를 다시 탔고, 버스는 언덕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크파길라디, 크파길라디!"
버스기사가 외친다. 짐칸에서 무거운 배낭을 꺼낸 후,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본다. 경운기 비슷한 것이 왼쪽에 놓여 있는데,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다.
"헬로우? 헬로우?"
우리 일행은 번갈아가면서 외쳐보았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한명은 짐을 지키고, 두명씩 짝을 지어 왼쪽, 오른쪽으로 헤어졌다. 키부츠 리더(키부츠의 모든 일, 특히 키부츠 발룬티어들을 관리하는 사람)를 찾아야 했다. 도대체 어디에 다들 모여 있담? 한참을 돌아다니고 돌아오니, 짐을 지키던 윤경이 키부츠리더 있는 곳을 찾았다며, 골프장에서 쓰는 클럽카에 짐을 싣고 있다. 부릉부릉....

"Oh, hi.... My name is Vincent, from England, nice to meet you!(어, 반가워, 난 영국에서 온 빈센트야)"
영국사람치고 얼굴 디따 크다...라는 첫인상으로 다가온 빈센트는 키부츠에서 클럽카를 모는 운전일을 하고 있다며, 이곳에는 한국사람이 세 명 더 있다고 말해 주었다. '신, 제리, 원'.. 그게 한국사람들의 이름이다.

'야곱(Jacob)'이라는 이름의 키부츠리더는 멕시코사람. 느글느글한 얼굴 위로 은테안경.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 하지만 그는 친절했다. 이것 저것 기본적인 사항들을 써서 제출한 뒤, 룸(room)이 정해졌다. 함께 온 윤경과 승희는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나는 셰이프린, 캐더린과 함께 룸을 쓰게 되었다.

룸... 엇, 룸 맞아?

발룬티어들이 사는 곳은 따로 발룬티어 블락(block)으로 불리운다. 노얼스 블락(North Block), 싸우스 블락(South Block), 그리고 네덜란드 발룬티어가 많아서인지 더치 블락(Dutch Block)이라고 불리는 건물 중, 내가 있던 곳은 싸우스 블락이다.

3명이 함께 쓴다는 룸은 침대 3개와 선반 3개, 의자 3개, 북밭이 장이 하나 달려 있는 썰렁한 룸이었다. 크... 이불은 덮고 자는 것인지, 깔고 앉는 것인지, 구별이 안 갈 만큼 냄새나고 더럽고, 침대 매트리스는 누런 곰팡이가 나 있고... 옷장은 먼지 투성이에, 모기장은 다 뜯겨져 있고, 룸... 맞아? 이제 여기서 살아야 한다니?

캐더린과 셰이프린은 자기네들만이 통할 언어, 더치말로 궁시렁, 궁시렁댄다.
그러더니 금세 짐을 풀고, 샤워를 하러 나갔다.
누가 한국 여자 아니랄까봐, 난 그 사이를 이용해, 제일 깨끗한 침대를 내 것으로 바꾸어 놓고, 짐을 천천히, 예쁘게 풀어 놓았다. 가져간 휴지에 물을 묻혀 열심히 닦고, 대강 정리를 해 놓으니, 캐더린과 셰이프린이 머리에 수건을 감고 등장했다.

"Nice Shower(샤워 좋았니)?"
"I took a hot shower, that was good!(뜨거운 물로 샤워했는데 좋더라)"

싸우스 블락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건조한 땅과 산이 보이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이 없다.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 몇 대가 시야에 들어올 뿐.
붕... "에구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어디선가 폭탄 소리가 들려온다. 가깝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예사롭지가 않다. 그래, 여긴 어쩜 삼팔선보다 위험한 곳일지도 몰라...

혼자 감상에 젖어 있다가, 폭탄소리에 놀란 나는 새로운 룸메이트가 기다리는 룸 스위트 룸(room sweet room, 사실은 room terrible room이었지만)으로 들어갔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 키부츠(KIBBUTZ)...?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스라엘 협동농장마을’등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전국적으로 약 270개의 키부츠가 있다. 그 규모는 다양하여 작게는 약 50여명, 많게는 약 1,000여명의 멤버(Member)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의ㆍ식ㆍ주, 교육, 생활비 등 모든 것을 제공받는다. 특히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교육부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키부츠는 특별한 사회계약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공동체인 것이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건국과 사회 구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초대 수상 벤 구리온,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모세 다얀 장군 등 초창기 이스라엘 정부와 국가 지도자들 그리고 지금의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키부츠 운동에 참여하여 왔다.

초기에는 키부츠가 농업과 축산업을 위주로 하였으나 최근에는 공업 뿐만 아니라 관광호텔 운영 등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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