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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울었다.

50년 만에 상봉한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국민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장을 취재하던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들고, 조명기사는 조명을 들고 울었다니 이 어찌 눈물의 바다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2000년 8월 15일의 한반도에는 감격의 눈물이 이렇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같은 시각, 자신들을 버려두고 떠나간 의사들을 기다리는 병상의 환자들에게서는 여전히 고통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혈육이 무엇이고 인간의 사랑과 정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깨달은 그 소중한 날, 정작 우리 사회는 이웃의 아픔과 생명을 외면하는 수치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에서 내려온 방문단들이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알고갈까 두려웠던 것이 어디 나 하나의 마음이었을까.

온 겨레가 회한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며칠 간만이라도 우리 '의사선생님'들이 환자곁으로 돌아가 주기를 나는 정말 소망하였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과 고통을 외면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그 기간만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겨레에 대한 예의,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믿었다.

눈앞의 어린 생명들조차 외면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민족을 얘기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의료계는 투쟁의 대오에 혼선이 초래될까 그러한 제안을 일축하였고, 상봉의 기간에도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 건강을 위해 이렇듯 중단없이 '전의'를 불태우는 투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는지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이제 '의사 선생님들'을 향해 발언할 기력을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지쳤다는 표현이 정확할 지 모르겠다. 열화같은 국민들의 비난을 일축하고 '정부와 언론에 세뇌당한 무지한 국민들' 탓만 앵무새처럼 해댈 수 있는 그 무모한 당당함 앞에서 이제는 무슨 말을 더해야 할 지 망연자실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일이 문제가 되겠지만, 이번 의료계 폐업 사태는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이 될 것이다.

나는 정작 그 이후가 걱정된다. 그동안 우리는 '의사 선생님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고귀한 생명을 돌보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러했고, 오랜기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게 된 모습이 또한 훌륭해 보였다.

'의사 선생님'에 대한 그런 존경의 신화는, 거품이 많이 섞여있더라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 좋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의사 선생님'이 사실은 자신의 이기적 타산을 위해서는 생명조차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환자들이 갖게 될 때, 앞으로 환자들과 의사들 사이에는 존경과 신뢰가 아닌 다른 무엇이 가로놓이게 될 것을 우려하게 된다.

나는 이제 '의사 선생님들'의 명예로운 후퇴가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불명예를 자초하여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존경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것은 사회 전체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제 마지막 호소를 하고 싶다.

의사 선생님들. 이번 상봉 장면을 보면서 선생님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보였다면 이제는 환자곁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산가족만큼의 애절함은 아닐지 몰라도, 당신들의 병원에는 고통 속에서 의사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 이은 또 하나의 소중한 만남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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