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8명 골프장 경기보조원 전원 해고. 골프가 천국인 나라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동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최근 골프회사측이 경기보조원(캐디)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일방적으로 자치회를 만들면서 노사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지난 8월31일 용인시 구성면에 자리한 한성CC 경기보조원(캐디) 208명 전원이 무더기로 해고당했다. 회사측이 'No 캐디 시스템'을 적용한다면서 경기보조원 전원을 자른 것.

지난 18일 밤 9시 한성CC앞, 경기보조원 노조원들은 노조 인정,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열흘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표정이다.

한성CC 경기보조원들은 지난 6월30일 노조를 결성했다. 회사측은 계속 단체교섭을 유보했고, 급기야 지난 8월31일 208명을 부당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지난 8월 중순께 모든 경기보조원들에게 "회사의 지시에 따른다" "불법적인 행위는 안 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고, 각서를 쓰지 않으면 디보트 백(필드에 나갈 때 메는 골프채가 든 가방)을 안주겠다고 협박했다. 한성CC 경기보조원 노조는 "사측의 요구에 반발한 경기보조원들을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냈고, 지난 8일부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지난 16일부터 매일 노동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한성CC와 바로 인접한 88CC. 지난 18일 오후 '9월20일부터 직장폐쇄를 한다'는 공문이 나붙었다. 이곳 경기보조원들은 노조 인정, 회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자치회 철회 등을 주장하면서 지난 1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이곳 경기보조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지난해 10월6일이었으며 지난 5월 노동부로부터 '88CC 경기보조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행정해석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측은 지난 7월 일방적으로 조장 8명으로 구성된 '경기보조원 자치회'를 만들면서 경기보조원에 대한 모든 관리 감독을 조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이미 결성된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노조측은 "자치회가 있으면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회사측의 위장 전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을 놓고 첨예한 노사 대립으로 불거진 것은 이 곳만이 아니다.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양프라자, 경북CC 등에서도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최근 골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문제는 그 동안 노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와 관련돼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 사법부는 대체로 경기보조원을 근기법상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노동부가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잇따른 행정해석을 내리면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골프장계에서는 일방적으로 자치회 구성, 용역으로의 전환 따위의 방법을 강구하면서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을 무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경숙 88CC 경기보조원 노조사무장은 "일하다 다쳐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전혀 받지 못했다"면서 "최근의 노동부 행정해석처럼 우리도 엄연히 노동자고, 당연히 근기법상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여성노동조합 민주노총 등 26개 시민사회단체는 특수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할 때는 근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기법에 첨가하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2. 골프장 자치회 근로자 인정 안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크게 마스터, 조장, 경기보조원들로 구성돼 있다. 마스터는 조장과 경기보조원들을 총 관리 감독하는 사실상 회사측 관리자. 조장은 경기보조원들에 의해서 선출되며, 조장들 밑에 배당된 경기보조원들과 한 팀을 이룬다. 경기보조원들은 마스터의 관리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측과 종속적인 근로관계가 설정되며, 따라서 근기법상 노동자로 인정된다.
 
그런데 현재 회사측에서 관리감독에 관한 모든 권한을 조장에게 위임하는 자치회를 임의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결국 경기보조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왜냐면 조장은 경기보조원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자치회가 운영되면 형식적으로는 경기보조원이 회사측의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지난 5월17일 노동부는 자치회가 있는 성남 한양CC의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해 "직접. 비밀투표로 선출된 조장들로 구성된 자치회가 자체 징계규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회사측의 관리감독을 받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행정해석을 내린 반면, 자치회가 없는 88CC에 대해선 경기보조원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다.  
 
 
3. 인권은 최우선의 가치

  최근 88CC에서 경기보조원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회의를 하거나 부분파업에 들어갔을 때 회사는 단전단수와 화장실 폐쇄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노사분쟁의 현장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고 우리 자신도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나 그 요구방법이 얼마나 정당했는지, 또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회사의 부당한 조치는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파악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권의 문제다. 물이나 전기, 화장실은 사람이 살아가고 활동하는데 있어서의 최소한의 요건이다. 단전단수나 화장실 폐쇄는 인간의 생명, 신체의 자유,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이러한 인권침해는 파업의 정당성 유무와 별개로 다루져야 한다. 설사 아무리 부당한 쟁의행위를 벌인다고 하더라도 회사측의 이런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이러한 인권침해를 회사의 부당행위를 부각시키는 무기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투쟁의 대상이어야 한다. 인권은 그 자체로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