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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싶던 철마. 그 철마가 이제야 다시 달린다. 이는 지난 8월의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난 18일(월) 경의선 철도 기공식은 그 약속이 말뿐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22일 이제 통일열차가 될 경의선(신촌 - 금촌)을 타 보았다. 통일열차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통일이야기를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통일호'는 아주 천천히 달렸다. 덜컹거리는 진동과 소음은 마치 지하철을 탄 듯했다. 이런 '통일호'이고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열차는 '새마을호'가 아니라 '통일호'여야 한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경의선 열차 안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타고 있었다. 여기저기 가방을 멘 아이들이 보인다. 서울로 통학을 하는 아이들인 듯했다.

매일 경의선으로 통학한다는 손상우라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다. 경의선이 다시 북한까지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냐고 묻자 "당연하죠"라고 대답한다.

"아주 기분 좋았죠. 이제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아요. 빨리 이 열차타고 북한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북한 애들은 평소에 뭐하면서 노는지 제일 궁금하단다. 전자오락실도 있다고 하자 "정말 오락도 해요?"라며 신기해한다. 북한 게임도 해보고 싶다고. 상우는 "제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통일되어 있겠죠"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얼마전 시드니 올림픽 여자 양궁 4강전에서 남북선수가 대결했던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빨리 통일돼서 양궁도 같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인다.

기차여행은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여행이다. 창문에 매달리고 연신 차내를 돌아다니며 부산하게 구는 두 아이가 눈에 띈다.
"애들이 기차 타는 걸 좋아해요. 집이 요 근처라서 가끔 이렇게 기차 타러 와요" 아이들의 어머니 손현숙 씨의 말이다. "경의선 복원이요? 통일이 앞당겨졌다고 하잖아요. 기분은 좋은데, 이게 언제 다시 뒤집어질지 몰라서 불안하네요. 이러다 갑자기 공사 중단하고 그러는 거 아닌지 말예요" 그래도 이번 남북공동선언문은 비교적 실천되고 있는 것 같다며 예전보다는 믿을 만한 것 같다고 한다.
"이제 애들 데리고 이 열차로 신의주까지 가 볼 수 있겠네요"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나란히 올라탔다. 자매인 오유진(중3), 오예진(중1) 두 여학생들은 그 또래답게 오늘은 학교에서 무얼 했느니, 누가 어쨌느니 라며 재잘댄다.

경의선 복원에 대해 묻자, 예진이는 선뜻 "좋아요. 할머니가 많이 좋아하세요. 기차도 더 좋아질 것 같구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시드니 올림픽 때 남북선수들을 같이 응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TV보면서 저도 같이 응원했어요"라고 덧붙인다.

반면, 언니인 유진이는 뚱한 표정이다. "경의선 복원? 별로예요" 말투가 퉁명스럽다. "그냥 북한이 싫어요. 우리가 계속 북한을 도와줘야 되잖아요" "그래? 그럼 신의주까지 갈 수 있어도 별로 가고 싶지 않겠네?" "음.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왜?"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잖아요" 그래도 역시 우리 민족이라고 느끼는지, 한 번은 가보고 싶단다.

열차는 1시간이 채 못되어 경의선의 종착역, 금촌역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역이다. 열차는 한시간에 한 대씩 출발, 도착한다. 그래서인지 역내는 여유로워 보이고 한가해 보이기까지 한다.

열차가 떠나도록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내는 김형신 씨. 29년째 철도원으로 근무했다는 김형신 씨는 "내 고향이 이북이야"라고 말을 꺼냈다. 자신도 빨리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통일이 금방 될 것 같다고 말한다. 7·4 남북공동성명, 94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남북관계의 역사를 지켜봤고 그때마다 기대만큼 실망하기도 했다고.

"근데 이번에야 말로 정말 통일될 것 같애"라며 남북공동선언문에서 합의한 내용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고 기대를 표했다. "원래 한나라가 둘로 나눠진 것만도 잘못인데, 아직까지 통일 안 되는 게 이상한 거지."

열차노선 등의 기계조작을 맡고 있는 김상춘 씨는 "통일이 물질적인 것만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며 지금은 너무 물질에만 집착하는 듯해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그리고 표를 판매하던 김용만 씨는 자칫 통일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며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전부가 통일을 원하는 거라고 봐야 한다며 그 통일열망이 제대로 전달된, 우리가 만드는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이제 경의선이 다시 신의주까지 달릴 날은 언제일까. 김형신 씨는 "통일? 3, 4년이면 될 거 같애" 라며 웃는다. 김용만 씨가 바로 "빠르면 10년? 통일은 쉽지 않은 거예요"라고 반박한다.

"왜 안 쉬워? 내가 집에 가는 걸 막으려는 거야? 금방 될 거야" "독일도 수십년이 걸렸잖아요" "독일하고 우리하고는 다르지" 둘은 주거니 받거니 통일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 저것 말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 통일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란다.

이제, 기자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통일열차에 올랐다. 통일열차에서의 노선을 바라보고 싶어 뒷좌석에 태워줄 것을 부탁했다. 차장인 이경섭 씨는 "아무나 태워주는 거 아니예요"라면서 경의선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을 해준다.

"경의선에는 이윤이 많이 안 남는 역이 많아서 근무자가 한 명도 없는 역도 꽤 있어요"라며 "경의선이 복원되면 정부도 더 투자할테고 좀 활발해지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표했다.

신의주까지 가게 될 첫 기차에 타보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아무나 태워주겠느냐"며 그 열차를 탈 수 있는 행운의 철도원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처음에는 주로 화물이 오고갈테니 더욱 기회가 없겠지만, 계속 오고가다 보면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날도 오겠죠"

경의선의 철도는 끝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 철도는 신의주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아니 대륙철도라는 말도 곧 현실이 될 듯하다. 이 '통일열차'에 몸을 실은 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통일, 정말 머지 않았어요"라고. 이제 이 통일열차는 이들의 통일염원을 싣고 북으로, 북으로 달릴 것이다. 정말 자유로운 남북왕래가 가능할 그날이 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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