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김기배 사무총장의 거듭되는 막말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는 여당대표를 향해 '지랄' 운운하는 막말을 한데 이어, 제주도 4·3사태를 '반란' 운운하며 희화화시켜 다시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발언들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김 총장의 '수준'을 의심하는 비판을 가했다.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원내 제1당의 사무총장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미달의 모습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김 총장 개인의 문제만으로 돌려버린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그같은 수준미달의 발언을 연거푸 내놓는 인물에게 당운영을 맡기고 있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에게서 발견된다.
[관련기사] 김기배총장의'막말'/공희정기자
김 총장이 드러낸 문제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지금 이회창 총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 자리를 유지하고, 야당내에서는 '대안부재론'속에 이 총재가 차기 대권후보로 기정사실화 되자 이 총재를 위해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않은 듯하다.
그래서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명단이 종종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고, 새로운 당내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총재의 '사람 고르기'가 국민 일반의 정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나라당의 당 3역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선의 경력을 갖고 있는 구여권 출신의 인사들이다. 개개인의 능력이야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요구하는 신선도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지역구 주민들이 아니라면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나라당 당 3역의 이름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총재의 측근 의원이라 거명되는 경우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름조차 알기 어렵거나, 그럴만한 독자적인 정치 성과는 거두지 못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의정활동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거나 소신있는 행보로 국민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의원이 이 총재 주변에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총재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측근'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근 이회창 총재의 브레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경우도 그렇다. 경위야 어찌되었든간에 이들조차도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적당하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책관을 가졌다는 비판을 지식인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유독 한나라당과 이 총재에게서는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총재의 이같은 용인술(用人術)을 보며, 자기대로의 원칙과 소신을 가진 사람은 불편해하는 대신, 주군(主君)의 뜻을 시키는대로 집행해주는 사람만을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국민의 인정을 받는 사람보다는 당장 일시키기에 편한 사람만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 총재 주변에는 국민의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은 찾을 길이 없고, 오직 충성심 하나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만이 남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야당총재라면, 자신의 주변에 그래도 온전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이 보았을 때 '흘러간 옛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중용하는 모습에서, 과연 누가 이 총재 스스로가 말했던 '새 정치'의 의지와 미래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 총재가 시대의 흐름과는 어긋나게 냉전적 통일관을 고집하며 정치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좁혀놓고 있는 것도 그의 주변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총재에게 필요한 것은 식당주인의 말을 놓고 YS와 낯뜨거운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야당총재가 가져야 할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지금 '이회창의 사람들'이 국민의 눈에 과연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지를 이 총재는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야당 총재의 주변에도 역사와 사회을 알고, 민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정치의 수준이 한단계 올라가고 야당이 제 길을 갈 수 있다. 김기배 사무총장의 잇따른 물의발언을 통해 이 총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