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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완도에 나왔다 돌아가는 길입니다.
서둘러 볼일을 마치니 뱃시간이 아직도 한 시간 반이나 남았습니다.
보길도 다니는 배가 떠나는 화흥포항까지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갈 생각입니다.
읍내에서 화흥포까지 거리가 8킬로쯤 되니까 뱃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공동묘지가 바라다 보이는 고개를 넘어 한 30분 남짓 걸으니 석장리 부두가 나타납니다.
요새 나는 부쩍 걷는 즐거움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도 큰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자전거는 본질적으로 속도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바퀴 달린 것들은 속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지요. 그래서 되도록 급한 볼일이 없는 한 자전거보다는 걷기를 택합니다.
먼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가까운 거리도 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짧은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몸에 배어 걸을 일이 생기면 우선 불평하고 짜증부터 냅니다.
다리를 잃은 다음에야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기적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나는 들판 사이 수로 위를 느리게, 나는 기러기나 왜가리보다 더욱 느린 걸음으로 걷고 또 걷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배미마다 볏짚 그루터기 태우는 연기 자욱합니다.
석장리 논둑 위로 피어오른 은빛 억새꽃밭 앞에서 나는 잠시 길을 멈춥니다. 이 가을 길 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인간이 억새 한포기보다 더 소중할 까닭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길의 주인이었습니다.
사람이 지나 다니는 곳이 길이 되었고 사람 자취 끊기면 길도 곧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발길따라 명멸해 간 길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 땅의 어떠한 길도 인간의 것은 아닙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국도로 갈수록 길로부터 인간의 소외는 더욱 커집니다. 속도지상주의로 치달려온 산업화가 남긴 재앙이지요.
그나마 대도시에는 명목상이라도 인도라는 것이 있지만 작은 도시나 국도, 지방도로 갈수록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배려한 흔적이 없는 도로에서 오직 자동차만이 난폭한 제왕으로 군림할 뿐이지요. 나 또한 완도읍에서 호흥포까지 자동차 길을 겨우 빌려 걷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인간은 자동차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길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노예가 된 인간은 마침내 다리도 잃게 될 것입니다. 꼬리처럼 쓸모 없어진 인간의 다리는 퇴화하여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구계등이 있는 정도리 앞 길을 지나는데 대형 덤프트럭 두 대가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스쳐갑니다. 레미콘 트럭이 연달아 달려오고, 깜짝 놀란 나는 도로변 논둑으로 비껴 서지만 도로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가 망설여집니다.
도로 곳곳에 고양이와 다람쥐, 개, 뱀, 족제비의 시체들이 뒹굴거나 아예 납작한 포가 되어 달라붙어 있습니다. 본디 길은 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것이기도 했는데 이제 길은 동물들의 적이 된 지 오랩니다.
사람인 나 또한 걷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걷기 시작했으나 이내 위험에 빠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인간이 다시 길의 온전한 주인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진정 없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자동차가 누리는 권리의 절반만이라도 길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 더 늦기 전에 자동차가 주인인 길을 걷어내고 사람이 주인인 길을 깔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양이, 닭, 염소와 다람쥐, 고라니가 주인인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인간이 자동차의 노예가 되기 전에, 길의 노예가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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