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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는 친구들은 낡은 앨범 속에서 정지된 시간과 추억만을 가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치 이승과 저승으로 갈리듯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문의 얼굴들.

학교의 강의실에서 가벼운 농담과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진 세월들이 문득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그때의 우정을 되찾을 수도 없고, 당시의 학창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직장 생활 30여년 동안 상하 직원들과 거래처가 질펀한데 친구를 찾아 추억을 파기에는 너무 바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직장과 관련한 사람들도 해가 바뀐 달력처럼 사라져 간다. 어쩌다 거는 전화 한 통화와 어렵사리 만나서 오고 가는 대화는 그저 "잘 있었오?", " 잘가시오"하며 기약없이 하는 "다음에 또 만나지요"일 뿐이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전화 한 통화 걸기 낯뜨겁고, 아이들은 자라서 결혼 시킬 때가 다가왔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주소록에는 지워진 이름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고교 동창 모임이니, 무슨 무슨 모임이니 연 걸리듯 하는 세상에 조용히 살아온 세월이 때로는 후회가 되었다.

을지로 입구의 롯데 백화점 부페 식당이 있는 37층이었다.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그런데도 연락이 오면, "글쎄"하고는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가 A은행 해외 지사장 노릇을 하다가 귀국한 J를 본 지 얼마만이던가 하는 마음이 그리움이 되어 있기도 해서 이번에는 대학동창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J의 연애시절에 그의 애인과 함께 어울렸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며 잘 살아가는 그들 부부. 그때의 애인이었던 지금의 부인이 부인병 수술이 잘못되어 하반신을 못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아내와 비슷한 이야기 같아 그가 더 보고 싶었다.

시간이 되어 하나 둘 모였다. 나는 그들은 2년 만에 그들을 보았다. 모일 만큼 모인 10여 명의 친구들은 이제 와서 회계사, 신문사 간부, 은행의 부장, 작은 기업의 사장, 운동기구의 판매 책임자, 호텔의 관리이사, 증권사 객장의 <좌불안석>으로 변신하여 앉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은 대화가 쉼 없이 이어져 갔다. 자주 보면 할 말도 많은 것이며, 우정은 책이 쌓이듯 쌓여가게 마련.

그들 하나 하나를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학창시절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고쳐 놓은 구호물자인 내 양복을 빌려 입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사진을 박던 친구도 낡은 앨범 속에서 빠져 나와 내 곁에 앉아 있다.

잃어버렸던 관계가 다시 연결되면서 과거의 청춘이 현실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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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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