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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正大) 조계종 총무원장의 이회창 총재 비판이 정가에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정대 원장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그 사람이 집권하면 단군이래 희대의 정치보복이 난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앞으로는 불자들이 비(非)상생하는 사람을 전부 쓸어내자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대 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더욱이 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이루어져, 발언의 정치적 성격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나는 정대 원장의 발언 내용이 맞느냐 틀리냐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가 이회창 총재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도 여러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며, 필요하다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당사자들에게 충고와 고언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총재 집권하면 희대 정치보복" 조계종 총무원장 발언 파문 확산 - 공희정, 김민철 기자

그러나 그것은 종교지도자로서의 신분에 맞는 방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정 정당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상대 당 총재를 향해 인신공격적인 독설을 퍼붓는 것은, 종교지도자로서의 충고를 넘어 작심하고 퍼부은 정치적 독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파문이 확대되자 조계종측에서는 유감을 표하고 정치적 논란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측도 차기 대통령선거에 미칠 부담을 의식하여 불교계와의 대립으로 비쳐지는 상황을 애써 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과 종교계의 부적절한 만남이 그동안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당의 지도자들은 종종 '인사'(人事)라는 이름 아래 종교계를 찾곤 한다. 따지고 보면 종교계의 마음을 잡기 위한 행동들인 경우가 많다. 특히 선거철만 다가오면 정치지도자들은 종교계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혹은 특정 종교로부터의 반대를 막기 위해 종교계를 분주히 찾아다닌다.

실제로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각 정당의 선거대책본부에서는 종교계별 운동상황을 일상적으로 점검해 나가고, 어느 교계가 누구누구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곤 한다. 후보의 입장에서는 교계의 표가 엄청나다는 숫적인 면에서 이에 매달리게 되고, 종교계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지원자를 당선시키는 것이 교계의 발전에 유익하다는 판단에서 손을 잡곤 한다. 표가 된다면 가릴 것이 없는 우리 정치권이 만들어놓은 자승자박의 문화이며, 일부 정치편향적인 종교계 인사들이 만들어놓은 오도된 문화이다.

정치권 인사들이 특정 종교의 행사에 참석 안할 경우, 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야 할 정도라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종교계가 정치지도자들의 태도에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들에 대한 충성도 점수를 매기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가뜩이나 여야가 반목과 대결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상황에서 종교계 지도자들까지 어느 한쪽에 서서 정치적 논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이다. 정말로 필요할 때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고언을 하기 위해서도 섣부른 정치적 발언들은 자제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철만 되면 종교계를 향해 구애(求愛)를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다. 심지어 선거를 의식하여 자신의 종교를 복수로 갖고 있는 정치인들도 적지않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신앙마저도 득표의 도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종교마저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 그리고 정치권과의 유착속에서 힘을 얻으려는 일부 종교계 인사들의 행동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다가올 대통령선거가 우리 종교계를 또 얼마나 흔들어놓을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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