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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다 정치난국이다 하며 겨울을 나는 우리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내려갑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만화책이나 보는 것은 아니겠죠? 여기 이 추운 겨울 바쁘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5041번 00호실로”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접견실로 향한다.
“어떻게 지내세요.”
조심스럽게 꺼낸 기자의 말에 효영 씨는 “잘 지내요. 휴가 온 것 같죠, 뭐”라며 투박스러운 웃음을 띄워 답한다. 하지만, “왜 이곳에 들어와야만 했는지를 생각하면 불끈불끈 화가 솟아나요”라는 말에는 분노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아프진 않으세요, 머리도 다치셨다는데...”
“괜찮아요. 뒷통수를 여섯 바늘 꿰맸는데 거의 다 나았어요. 진압 때 맞은 곳은 좀 쑤시지만, 파스 붙여요.”
아픈 것쯤은 별 대수로울 게 없다는 표정이다.

한 달여전 그는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 구속영장에는 방화죄, 공무 집행 방해, 무단 침입, 화염병 소지 등의 법이 적용되었다. 그 날 새벽, 효영 씨는 월곡동 철거 지역 옥상에서 혼자 규찰을 서고 있었다. 갑작스런 컨테이너의 등장. 하늘에서 철거반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가 뚝 떨어졌다. 그리고 효영 씨는 뒷통수가 찢어질 정도로 얻어맞은 채로 경찰서로 이송됐고, 도주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요즘 그의 하루는 한 권의 책과 짧은 면회 시간, 텔레비전 보기 등으로 채워진다. 달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2권까지 읽다가 아리랑으로 바꿨다고 한다. 효영 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깥의 친구들이 보내주는 책을 열심히 보고 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이 곳에 텔레비전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효영 씨가 들어왔다고 호강한다고들 한다. 효영 씨도 그렇다.

“여기 운동도 시켜주고, 괜찮아요”라고 말하는데, 기자보고 꼭 들어오라고 권하는 것만 같다. 날씨가 추울 텐데 걱정스런 눈치를 보이려니, “바깥보다는 안 춥겠죠”라며 말문을 막아선다. 영하의 추위를 난로 하나 없이 지내야 하는데도, 불평 한 마디 없다. 그저, “하루 하루 짧은 만남이 아쉬울 뿐이죠. 끝나고 나면 허탈하기도 하구”라며 면회시간이 짧다는 말이 전부다.

그래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친구는 좋아해요. 밖에서는 바쁘다고 네 다섯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자기가 보고 싶은 시간에 딱 나온다고요”하며 씽긋 웃어보인다.

효영 씨는 단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고 열흘 만에 이곳에 들어왔다. 학생회장의 직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선지, 착잡하기만 하다.

“준비치 않은 휴가여서... 실천할 수 없는 공간이 답답하네요.”
친구들 사이에선, 씻을 틈도 없을 만큼 바쁘게 돌아다녀서 ‘명효영’하면 발냄새가 먼저 떠오른다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같은 대학 성현영(정법대 정치외교 97) 씨는 “나와서 투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예요”라며 효영 씨의 부지런함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눈치다. 현영 씨의 말대로 효영 씨가 ‘이동지’들에게 보낸 편지들엔 투쟁의 의지가 불끈 달아올라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6호에 실린 글입니다. '2001년 대학생들의 겨울나기'라는 이름으로 4번에 걸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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