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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취임한 지 45일이 지났다. 김대표는 이른바 '6공 출신' 인물로서 당내 기반 취약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표로서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대표의 당에 대한 장악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은 그의 최근 언행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김대표는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제기된 국가보안법 자유투표 요구를 일축하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로 개정작업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안법 개정을 자유투표를 통해 처리하는 것은 집권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민주당은 당론을 갖고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보안법 개정은 다시 표류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현안에 대해 (당에서) 말하는 것을 '정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놀랍고도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안기부 자금사건과 관련된 대야(對野) 공세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는 안기부 사건에 당이 지나치게 개입하지 말 것을 주장했던 몇몇 최고위원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김대표는 지난 1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 '강한 여당'을 강조하였다. 김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의 화두가 '강력한 정부'였음을 생각할 때, 가히 김심(金心)의 충직한 실천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재향군인회 초청 토론에 참석하여 "4·3사건이 남로당이라는 불순세력이 개입해 발생했다는 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이라고 말해 4·3 사건의 진상과 관련하여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근래 들어 김대표의 발언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뉴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사실은, 그가 집권당 대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당의 '기강'을 잡는 데는 일단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인'(黨人)으로서 이기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를 뒷배경으로 하여, 김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들과 소장파들의 독자행동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는 모습이다. 레임덕에 따른 당내 질서 동요를 걱정하던 김대통령에게 이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일 수 있다. 아마도 김대통령으로서는 김대표가 대표로서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제 몫을 다해주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김대표는 김심(金心)은 만족시키고 있을지 모르지만, 민심(民心)은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지난 45일의 기간동안 민주당은 지난해 국민이 그토록 요구했던 '쇄신'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야당을 포용하며 상생의 정치와 정국정상화를 실현해가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김대표가 말한 '강한 여당'은 현정국에 대한 그의 철학이 매우 우려할 만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강한 힘으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초래된 민심이반의 원인조차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일사불란한 집권당을 만드는 것이 국민이 말했던 '쇄신'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대통령이 집권당을 관리하는 데 편리한 길이기는 해도, 국민으로 하여금 집권당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김대표가 주력해 온 방향은 대통령의 안정적인 통치를 뒷받침하는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국민과 함께 개혁하는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대표로서는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의 당대표가 갖는 근원적인 한계라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김대표의 보안법 개정 연기 입장이 말해주듯이, 그의 개혁의지 부족으로 전반적인 개혁작업이 정체상태에 있다는 당 안팎의 비판이 대두하고 있다. 그가 당대표가 된 이후 한 일들은 의원 빌려주기, DJP 공조복원, 당내 기강 확립, 개혁입법 추진 연기 등과 같은 퇴행적인 조치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초 이른바 '6공 출신' 당대표가 제대로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김 대표가 들어선 이후 야당과의 관계도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김대표는 대야(對野) 강경론자로 익히 알려져 왔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중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사정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야당의 강한 반발을 샀던 것이 김 대표였다.

얼마전 안기부 자금사건 때에도 김대표는 야당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 야당의 강한 불신과 반발을 샀다. 야당을 바라보는 김대표의 시각이, 야당을 발목만 잡는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고 제압의 대상으로 삼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발상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김중권 대표의 기용은 단기적으로는 약효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집권당 내부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진정되는 모습이고, 당대표에게 무게가 실리며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안정을 위해 개혁을 유보한다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집권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김대표 체제 이후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집권당의 개혁정체, 보수화, 과거회귀 움직임의 귀추를 우리는 계속 주시할 것이다.

김심(金心)보다 민심(民心)을 살펴라. 취임 45일을 맞은 김중권 대표에게 주문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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